드라마 속 착한 주인공. 그 옆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 있습니다. 악역이 없으면 드라마는 왠지 심심하게 느껴지죠. 두 역할의 대비는 드라마의 재미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선과 악을 명확히 인식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선과 악, 옳고 그름, 흑과 백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수박을 반으로 쪼개듯 세상일이 단순했다면 기자의 고민도 금방 쪼개졌을 겁니다.

  기자로서 가장 큰 고민은 기사의 방향, 즉 ‘각’을 어떻게 정하냐였습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 단순히 정보만 전달할지 아니면 비판해야 할지. 학생과 대학본부 혹은 학생자치기구를 대상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았기에 비판 각을 세울 때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악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착각했죠.

  지역보도기획으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취재하고, 계속해서 각을 고민했던 기사가 있습니다. 수협의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 현대화 사업 이후 약 5년째 투쟁을 이어가는 상인들의 이야기였죠. 수협과 상인의 대결 구도를 설정하고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파고들수록 누가 착한 주인공이고 악역인지 알 수 없었죠.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달랐고, 선과 악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착한 주인공과 악역이 대비될수록 드라마는 흥미진진해집니다. 기사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고, 기사는 현실입니다. 현실은 너무나도 복잡하기에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죠.

  그렇기에 ‘비판’은 ‘심판’이 아닙니다. 비판은 진실을 날카롭게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각일 뿐, 기자가 감히 선과 악의 역할을 정할 수는 없죠. 보는 이에 따라 옳고 그름을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죠. 독자가 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야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기자의 몫입니다.

  부끄럽게도 기자 본인부터 이분법적 사고로 사안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우리 언론의 모습은 어떨까요? 여전합니다. 신문사, 방송사뿐 아니라 유튜브, 팟캐스트 등으로 언론의 범위가 넓어졌죠. 최근에는 ‘유튜브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탄생했습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언론 활동을 할 수 있죠. 그러나 사안을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내는 등 극도로 양극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저 편 가르기식 사고로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하죠.

  여기서부터 기자와 ‘기레기’가 구분되는 게 아닐까요? 기자 본인도, 언론도 흥미 유발하는 드라마에서 빠져나와 ‘진짜 기사’를 써야 합니다. 잘못된 프레임을 치우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하죠. 답을 정해주는 언론이 아닌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언론이어야 합니다.

 

지선향 대학보도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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