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SF영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다. 영화미학과 시각기술 측면에서 빼어난 성취를 보이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 문제와 철학적 사유를 반영하는 작품이 많다. 문학적 상상의 영역에 있던 과학기술이 상당 부분 현실의 문제가 됐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래나 우주라는 범주를 시청각적으로 유려하게 구현하게 된 덕이다. SF영화는 외견상 머나먼 상상적 세계를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SF의 주된 시간적 배경인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와 관계를 맺는다. 통념적으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만, 이질적인 데자뷔처럼 때로는 시간이 비선형적으로 감각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때의 비선형성이란 인간의 정신 안에서의 인식 차원의 성질로 한정된다. 그러나 SF에서는 기술적 장치를 활용해 물리적인 시간 흐름에 조작을 가하고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이 가능성으로부터 ‘미래예지, 시간여행, 평행세계, 다중우주’ 등의 주제가 파생된다. 여기에 시간이란 무엇인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내재한다. 

  한편 SF의 상상적 영역에 존재하던 ‘사이보그, 로봇, 복제인간, 인공지능’ 등의 인공물들은 이미 실체화됐거나 앞으로 실체화될 가능성과 함께 한층 심화한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신체, 지능, 정신적 특질의 측면에서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한 인공생명들이 등장할 가능성이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적 존재들은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인간과 주변 존재들의 관계와 조건에 대한 재성찰을 요구한다. 

  SF의 세계는 종종 붕괴하고 파국을 맞이한다. 외계인의 침공, 핵전쟁, 바이러스의 창궐, 전 지구적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아포칼립스의 위기에 빠진다. 이때 개인의 생존투쟁은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성, 즉 도덕과 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한편 국가 차원에서는 주로 통치의 문제가 부각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임시로 구축된 권력구조는 머지않아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일상화가 된다(예외상태의 상례화). 이를 가능케 하는 매개체는 첨단 미디어를 활용한 감시체제와 무력 통제의 결합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지위와 삶의 조건은 바닥에 떨어지고, 인물들은 이 구조를 전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핵전쟁과 원자력발전소 사고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통해 이러한 상황의 가장 초기 단계를 체험하고 있다.  

  SF영화 속 미래나 우주에 대한 상상에는 과학 발전에 대한 전망(기대 혹은 우려)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돼 있다. 이처럼 영화 속 세계를 현실에 대한 거울로 인식한다면, 마치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의 삶의 조건을 반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 더 나은 삶의 형태에 대해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영석 영화전공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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