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란 ‘길을 인도해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뜻합니다. 흔히 가이드로 대체되는 단어인데요. 이번학기 문화부 기자는 길잡이가 돼 교환학생과 남다른 한국 문화를 체험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교환학생에겐 특별한 하루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번주 길잡이와 교환학생은 비교적 쉬운 난이도로 여러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산, 청계산에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맑은 하늘 아래 정상지점인 매봉까지 다녀왔는데요. 산을 오르며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본격 청계산 정복기, 지금 시작합니다! 

 

산에서 마주한 등산객들의 정을 느낄 수 있던 특별한 하루였다. 매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은 특히 눈부셨다.

  우리나라 국토의 약 70%는 산지로 이뤄져 있다. 등산 문화가 삶의 일부로 자연스레 스며든 이유다. 등산은 사람 냄새를 느끼기에도 좋은 수단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마주하는 등산객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파란 하늘 아래 산 중턱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이뿐인가.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계곡에 들르고 가을에는 새빨간 단풍을 만끽하기 위해 산으로 향한다. 우리의 등산 문화는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담고 있다. 교환학생 눈에 비치는 한국 등산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모처럼 화창했던 지난달 24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교환학생과 함께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청계산 정상을 찍고 왔다. 

  그들이 모두 단풍잎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청계산의 이름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등산로 시작점인 원터골 입구에 들어서자 선글라스와 형형색색 등산복을 갖춘 등산객들로 붐빈다. 아직 꽃봉오리가 채 터지지 않은 3월 말의 산은 사뭇 메마르지만 노랑, 연두, 빨강으로 물든 화려한 등산복이 등산로를 생기롭게 꾸며준다. 등산객의 전문적인 복장을 본 캐나다 제네사 학생(프랑스어문학전공 3)은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이다. “등산객 대부분이 숙련돼 보이네요. 전문적인 장비와 등산용 가방이 허름한 제 모습과 대비돼 벌써 겁이 나요!” 미국에서 온 에스더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도 웃으며 말한다. “밝은색 옷을 입은 등산객을 바라보는 게 재밌어요. 어두운 옷을 입고 와서인지 제가 아마추어란 사실을 들킨 것만 같네요.” 

 

  본격적인 등산 전 사람보다 높이 쌓인 돌탑이 보인다. 부모 품에 안겨 소원을 비는 어린아이도 눈에 띈다. 캐나다에도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돌탑이 있는지 묻자 제네사 학생은 이정표 역할을 했던 ‘이눅슈크(Inukshuk)’를 설명한다. “돌로 쌓아 올려진 이눅슈크가 있어요. 북극 지방 이누이트족이 쌓는 돌인데 사람 모양이에요. 영적인 의미를 갖지만 소원을 빌진 않아요.” 이눅슈크는 이후 밴쿠버 동계올림픽 로고 제작에 활용되기도 했다.

  낯선 이에게 베푸는 정(情)

  산을 쌩쌩 잘 오르는 에스더 학생과 달리 제네사 학생이 숨을 헐떡인다. “제 고향엔 산이 없고 넓은 평야 지대만 있어요. ‘목줄 풀린 강아지가 3일 동안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농담도 있죠.” 힘겹게 산을 오르던 중 벤치를 본 제네사 학생이 잠깐 쉬어가자고 제안한다. 이때다 싶어 직접 챙겨온 김밥 세줄을 가방에서 꺼낸다. 재료는 조촐하지만 흰 밥알이 꽤나 찰지고 맛있다. 제네사 학생이 함께 나눠 먹는 김밥 맛에 감탄한다. “잠시 쉬면서 대화도 나누니 좋네요. 재료도 신선해 맛있고요!” 김밥을 한입 베어 문 미국인 에스더 학생도 한마디 거둔다. “저는 대만계 미국인이에요. 가족끼리 소풍 겸 등산을 갈 땐 크래커와 샌드위치, ‘사치마(沙琪馬)’라는 전통 과자를 먹곤 했죠.”  

  중간지점에 도착해 안내도를 보는 동안 얼핏 ‘몬트리올’이란 단어가 들려온다. 반사적으로 고갤 돌려 캐나다를 주제로 담소를 나누던 등산객에게 제네사 학생을 소개한다. 그러자 중년의 등산객은 반가운 듯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인다. “지난 1994년에 다녀온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찍은 사진이야. 미국 디즈니랜드도 함께 다녀왔지.” 미국 이야기가 나오자 에스더 학생도 대열에 합류한다. 멀찌감치 지켜보던 다른 등산객은 직접 깍둑 썬 무를 건네준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의 정이라며 건빵을 집어주는가 하면, 막걸리를 손수 따라주기도 한다. 제네사 학생은 등산객 모두가 친절하다며 한껏 신난 표정이다. “정말 친절하세요. 제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 그러나 제네사 학생의 짧은 한국어 인사말에 등산객 얼굴이 활짝 핀 것만은 확실하다. 에스더 학생 역시 감사함을 전했다. “완전히 다른 언어권에서 온 우리를 반겨주고 음식을 나눠준 데 깊이 감사함을 느꼈어요.”

 

  이런 문화는 처음이지?

  돌문바위에 다다르자 모든 등산객이 바위틈 사이를 돌아다닌다. 표지판에는 이곳에서 청계산의 정기(精氣)를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지나칠 수 없다. 에스더 학생이 바위를 통과하며 미국에는 이처럼 민족 간 통용되는 문화가 없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Melting pot’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문화와 인종, 종교가 섞여 있어요. 한국처럼 같은 민족끼리 공유하는 문화가 없는 이유죠.”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선 덥다가도 서늘한 산바람에 다시금 추워진다. 옷을 벗어둔 제네사 학생이 다시 주섬주섬 겉옷과 스카프를 챙긴다. 이제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눈앞에 어느덧 1040번째 칸이라는 표식이 나타난다. 건너편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앞으로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본다.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나와요.” 순간 앞질러가는 등산객의 휴대용 라디오에서 트로트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트로트 장르를 안다고 말문을 연 제네사 학생은 캐나다에서 등산 시 주의할 점을 알려준다. “캐나다에선 야생곰을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산에서 노래를 듣는 행동은 위험할 수 있어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전후방을 살피며 걸어야 하죠. 반면 공원에서 조깅하거나 자전거 탈 때는 음악을 크게 듣곤 해요” 

  마침내 정상에 오른 이후

  드디어 해발 582m인 매봉정상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탁 트인 서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제네사 학생에게 소감을 묻는다.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바위에 앉아 쉬면서 전경을 바라보니 평화롭기도 하고요. 고된 피로가 단번에 가시네요!” 에스더 학생도 덧붙인다. “우리가 해냈어요! 미세먼지도 없어 등산하기에 최적의 날씨네요.”

 

  하산하면서 에스더 학생이 나뭇가지 곳곳에 묶인 리본을 발견한다. 라임색 리본에는 한 산악회 이름이 큼지막이 적혀있다. “미국엔 없는 표식인데요? 길을 찾기 위해 바위에 흠집내는 건 봤어도 이렇게 나뭇가지에 묶진 않거든요. 자연도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기발해 보이네요.” 

  어느덧 산어귀가 보인다. 비록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4시간이었다. 앞서가던 에스더 학생이 휙 뒤돌아 한국 등산 문화가 갖는 의미를 짚는다. “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등산을 즐기는 모습이에요. 등산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하기 좋은 활동인 것 같네요.” 끝으로 제네사 학생이 험난했던 등산을 마친 소감을 전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만큼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다리가 아픈 건 며칠 가겠지만요!” 

 

 -문화수첩: 웅장한 경관과 함께하는  캐나다와 미국의 트레킹 장소

 시원스럽게 위로 뻗은 나무 ‘라치(Larch)’는 우리말로 낙엽송이다. 트레일(Trail)은 ‘걷는 길’을 의미한다. 캐나다 앨버타 주에 위치한 캐나다 밴프(Banff) 국립공원에는 약 15.8km 길이의 라치 밸리 트레일이 있다. 이곳에선 에메랄드빛 ‘모레인 호수(Moraine Lake)’와 이를 둘러싼 열 개의 봉우리를 보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진한 녹음에 둘러싸인 완만한 숲길을 지나다 보면 황금빛 낙엽송 숲도 만날 수 있다. 저 멀리 해발 3000m 봉우리를 보며 숲길을 따라 걷는 기분은 어떨까. 한편 이곳은 야생곰이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최소 4명 이상 산행을 권고하는 경고문이 존재한다. 초반 오르막길은 다소 험난한 편이며 소요시간은 대략 왕복 5시간이다.

  한편 미국 유타 주 남서부에 위치한 자이언(Zion) 국립공원은 하이킹을 통해서야 비로소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조가 아니라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자이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일은 ‘더 내로우스(The Narrows)’와 ‘엔젤스 랜딩(Angel’s Landing)’이다. 특히 더 내로우스에선 양쪽 절벽 사이 협곡을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중 하이킹을 할 수 있다. 강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때론 수영도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다.  반면 왕복 5km가 되지 않는 짧은 코스의 엔젤스 랜딩 후반부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천사가 내려와 머물다 간 듯 풍경은 아름답지만, 절벽 아래를 보면 눈앞이 아찔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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