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론으로 계속 몸살을 앓아온 지식계가 본격적인 대안모색에 나서고 있다. 위기론의 분석과 함께 전반에 걸친 대안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론은 새천년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터라 면역이 되어버려 예전같은 위기감을 느낄 수 없지만 여전히 인문학 위기론은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문학 위기론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두 세미나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김영진)에서 지난 3일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연 ‘인문학 위기 이대로 좋은가’ 심포지엄과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소장:김희명)가 지난 2일 성신여대 수정관에서 연 ‘인문학과 영상매체’ 국제학술회의가 그것이다. 전자가 인문학의 위기를 내재적인 관점에서 한국 인문학계의 학풍문제와 정부의 학문정책 비판을 통한 거시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면 후자는 인문학위기를 최근 논의되고 있는 ‘영상문화학’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 대안제시에 나서고 있다.

먼저 ‘인문학 연구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애초 정부의 학문정책을 목적으로 열린 심포지엄이라 비판적 목소리가 패널을 통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패널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목소리를 낸 이는 조동일 서울대 교수. 조동일 교수는 자신의 교수 체험을 근거로 학문연구할 시간마저 빼앗는 정부의 학문정책을 신랄히 질타했다. “학문을 정상화하려면 학문전환이 근본 필수과제인데 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하며 대학에 모두 일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동일 교수는 교수 자격규정 문제와 정부주도의 ‘학술연구원(가칭)’ 신설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조교수에 따르면 외국은 교육은 하지 않고 연구에만 종사하는 사람을 교수로 두어 자율성과 신분안정을 부여하는 대신에 능력을 제고하고 충실한 연구성과를 내놓도록 한다.

그러나 조교수가 교수집단의 자율성을 너무 소홀히 아닌가하는 지적이 토론에서 제기되었다. 정부주도의 중점적인 학문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관료주의나 관치주의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학문의 중앙집중적, 획일적 통제와 평가는 각 대학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올바르지 않고 수도권중심주의와 서울대패권주의 극복이 현 학문 풍토에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신여대에서 열린 ‘인문학과 영상매체’ 국제 학술대회는 인문학 위기의 대안을 정책이나 학문풍토의 문제점에서 제기하기보다 인문학의 새로운 발전경로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우마니스타·꿈·여명의 저 언덕’이라는 발제문을 발표한 문화평론가 송희복씨는 영상의 구체성을 이용해 문자언어가 갖는 텍스트 설명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표를 해 주목을 받았다. 송희복씨는 “현재 세기말적 전환기에 △문학 △인문학 △문자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위기를 진단하는 예측들이 대두하고 있다”며 “최근 철학쪽에서 영상에 대한 매체로서의 가능성과 문화적 전망을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를 인식하고 체계화하려는 본원적인 작업이 그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송희복씨는 ‘영상이 중요한 발전 매개체이며 해방구이지만 영상이 갖는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속성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고려대 김우창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사회가 변화하고 문화가 변동한다하더라도 삶을 인식하고 사유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인문정신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현재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존의 문자 문화와 새로운 영상 문화를 기계적으로 결합한다든지 하는 이러한 결합들이 새로운 인문학의 한 분야인 영상문화학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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