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가장 빛나는 시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진 않나요. 이렇게 젊은 날의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20대 청춘, 그 젊은 날의 초상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초상은 ‘혐오사회’입니다. 대한민국은 요즘 혐오사회라고 불립니다. 자신과 다른 타인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일이 일상이 돼 버린 것이죠. 이는 대학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생 누구나 한 번쯤 ‘XX충’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사용해본 적이 있을 텐데요. 유행어처럼 쓰이는 혐오단어로 인해 대학가엔 벌레만 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무분별한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을 젊은 날의 초상과 함께 살펴보시죠.
 
 
  들끓는 벌레들
  방충망 없는 대학사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벌레가 돼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어느 날 벌레로 변한 남자에게 가족은 무관심과 경멸을 보낸다. 심지어 그의 여동생은 ‘우리는 저것을 없애버려야 해요’라고 말하며 벌레가 된 남자를 혐오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자가 한순간에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그의 모습이 흉측하고 쓸모없는 벌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서로를 흉측한 벌레라고 부르며 웃고 있다.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던 소설 속 장치인 벌레는 이제 주변인들을 향한 일상적인 표현이 돼버렸다. 이러한 실태를 분석하기 위해 심층기획부는 대학 사회의 20대 남녀 15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29일 3일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꿈틀꿈틀 자라난 벌레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XX충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20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단어를 아는 만큼 많이 사용하고 있기도 했다. ‘주변에서 XX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어봤다’는 응답은 약 97.3%(146명)로 대다수였다. 단어를 들어본 빈도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이다’는 응답이 약 46.6%(68명)로 가장 많았다. 절반에 달하는 이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혐오 단어를 듣고 있는 것이다.

  혐오 단어를 들었던 장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응답이 각각 약 43.8% (64명), 약 37%(54명)였다. 장정욱 학생(기계공학부 2)은 온라인 게임에서 ‘한조충’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한조라는 캐릭터의 이름과 충을 결합해 상대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되곤 해요.” 한조라는 캐릭터를 사용하는 유저의 대다수가 부족한 실력으로 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강예리 학생(경영학부 1)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XX충을 들어봤다. “놀이공원에 초등학생들이 줄 서 있는 걸 보고 한 친구가 ‘저 급식충들!’이라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친구들 모두 웃어 넘겼죠.”

  ‘직접 XX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응답자들은 ‘온라인(약 25%)’보다 ‘오프라인(60.3%)’에서 더 많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송수혁 학생(문헌정보학과 1)은 혐오 단어의 사용 범위가 확장됨을 지적했다. “온라인에서 쓰던 충이 이젠 오프라인에서까지 쓰이게 된 것 같아요.”

  사용 빈도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이다’는 응답이 약 35.3%(41명)로 가장 많았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이다’는 응답이 약 28.4%(33명)로 뒤를 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혐오 단어를 일상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한지민 학생(가명·연세대 경영학과)은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카페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은 뛰어놀며 크는 것이라며 민폐 끼치는 애들을 감싸는 걸 봤었어요. 친구들과 ‘저게 말로만 듣던 맘충이네’ 라며 엄청 욕했었죠.”

  웃음에 가려진 칼날
  이렇게 많이 쓰이고 있는 XX충이란 단어는 20대에게 어떠한 의미일까. 설문조사의 한 응답자는 “흡연충은 꺼지라는 말을 들어봤다”며 “원래 충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흡연충이라 불렸던 것에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응답자들을 혐오 단어를 들었을 당시 ‘불쾌하다(약 26.8%)’, ‘수치스럽다(약 5.4%)’, ‘억울하다(약 5.4%)’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XX충이라는 단어 및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약 53.3%(80명)가 ‘타인을 비방하기 위해서다’고 답했다. “존중받아야 할 타인의 특성을 쉽게 비하할 수 있는 도구로 XX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을 법한 행동도 XX충 하나로 이해받을 기회조차 없이 비하되는 것 같다” 등 설문조사에 응답한 많은 이들이 타인을 깎아내리기 위해 XX충을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혐오 표현을 통한 비방은 타인에게만 향하진 않았다. 김수지 학생(가명·한국외대 행정학과)은 혐오 표현이 자기 비하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나 요즘 학식충이야 돈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혐오 단어를 열등감의 표현으로 쓰는 것 같아요.”

  그러나 불편함을 토로한 학생들과 반대로 ‘XX충이라는 혐오 단어를 가벼운 농담으로 여겼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XX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유행어라고 생각해서(약 58.7%)’,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해서(약 43.3%)’, ‘혐오 단어라고 생각되지 않아서(약 27.3%)’가 꼽힌 것이다.

  그중에서도 “XX충을 쓴다고 꼭 혐오하는 건가요?”라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한명지 학생(아시아문화학부 1)은 XX충을 한 때의 신조어라고 말했다. “비하의 목적이라기보단 스스로 유행을 잘 따라가는 사람임을 나타내고자 사용하는 것 같아요.” 장정욱 학생은 XX충이 단순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실 ‘고딩’도 고등학생을 얕잡아 쓰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일반명사로 쓰이잖아요.” 

  오히려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연출을 위해 충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하기도 했다. 설문조사의 한 응답자는 “‘너 담배 피우는 거 다른 사람한텐 민폐야’보다 ‘흡연충들은 민폐야’라고 말함으로써 불쾌할 수도 있는 표현을 웃으며 전달한다”고 말했다. XX충의 사용이 잦아질수록 혐오의 의미는 퇴색돼가고 있다.
 
  불편함을 잊은 이에게
  존중은 없다

  혐오보다 두려운 것
  무뎌진 칼날로는 아무것도 자르지 못하는 것처럼 혐오에 무뎌지면 어떠한 변화도 꾀할 수 없다. “혐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혐오 단어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혐오 대상이 돼도 불쾌함을 느끼지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다” 등 많은 응답자가 혐오에 대항할 목소리가 부재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을 XX충이라는 세 글자로 정의하는 현상을 문제 삼기도 했다. 서다영 학생(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은 소통이 부재한 사회적 분위기가 XX충이라는 표현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행동의 속사정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한 사람에 대해 내가 본 것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는 현대인의 문제 같아요.”

  언론 매체에서조차 XX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학생도 있었다. 남민혁 학생(서강대 경제학과)은 언론 매체가 XX충을 마치 전문 용어처럼 사용해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우려했다. “신문에서 기균충(기회균등선발)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봤어요. ‘유커’처럼 언론에서 만든 단어 같았죠. 하지만 단어의 사용이 많아지면 이것이 곧 생각으로 굳어질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