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사전적 의미는 ‘인정, 풍속 따위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다. 그 의미는 ‘외국’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일본을, 중국을, 미국을 이국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가 우리 문화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팔이나 우즈베키스탄은 어떨까. 우리는 네팔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순수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문화를 알기 위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동대문에서 그 이국의 문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4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늘어선 등산용품점들을 볼 수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네팔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네팔 가게가 많아 ‘네팔 거리’라고 일컬어지는 장소지만 생각보다 그 건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네팔 음식점이 보이는데 그 모습은 조금 외롭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네팔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의 네팔 음식점들이 모두 휴업하기도 했다.
 
  네팔 거리는 주로 음식점으로 이뤄져 있다. 대중들에게 네팔 음식은 감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네팔 음식은 전혀 어려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될 정도로 네팔 거리의 대표적인 가게 중 하나인 구룽 헐커만씨(41)의 가게의 주메뉴는 ‘커리’와 ‘난’이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매운 음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음식도 많다. 한국 손님을 위한 배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메뉴판은 각양각색의 음식들로 채워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릇보다 커다란 난과 네팔-인도식 양고기 커리
 
  기자를 포함해 네팔에 대해 에베레스트밖에 모르는 이들에게 네팔식 커리는 낯설 수 있다. 인도에 비해 네팔은 커리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네팔식 커리가 인도 커리와 구별되는 이유는 지리적 특징에 있다. 네팔은 남으로는 인도와 북으로는 티베트자치구와 이웃한다. 그러면서 그들과 교류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네팔의 문화는 그 두 국가의 문화를 합쳐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룽씨가 설명했다. “네팔은 다민족 국가에요. 민족마다 고유의 생활습관, 문화를 가지고 있죠. 그만큼 네팔은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고 있어요. 그중 네팔 커리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죠. 하지만 인도 커리보다 덜 매워서 티베트 음식과 비슷한 정도에요.”
 
  친절한 메뉴 스펙트럼과 함께 주목해야 할 것들이 또 있다. 레스토랑에 촘촘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네팔 문화다. 벽 한 켠에는 불상이 온화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고, 기둥에는 마치 일본의 오니를 연상케 하는 가면이 걸려있다. 네팔 거리 음식점은 음식만 파는 가게는 아닌 것이다. 네팔 레스토랑 점주, 구룽씨가 말을 보탰다. “제 가게가 네팔을 알리는 대사관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손님에게 네팔 문화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죠.”
 
 
온화한 미소로 손님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불상
 
  네팔 거리에서 배를 채웠다면 이젠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보자. 네팔거리에서 도보로 20분 정도를 걸으면 광희동에 도착할 수 있다. 또는 지하철을 이용해 바로 다음 역에 하차하면 된다. 2,4,5호선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 12번 출구로 나가 코너 한 개를 돌면 뉴금호타워가 보인다. 뉴금호타워는 러시아 알파벳, 키릴문자로 적혀진 상점들로 채워져 있다. 실제로 가게에 진열된 상품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병기돼 있다. 그 타워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물론 그 앞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로 소통한다. 그 가운데에 있다 보면 마치 러시아 거리에 서 있는 듯할 것이다.
 
골목길부터 바로 보이는 중앙아시아의 모습
 
  1991년 소련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면서 러시아 보따리상이 동대문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러시아 타운이 형성됐고,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거리를 떠나자 그 자리를 몽골과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인들이 메우게 됐다. 그렇게 동대문에는 또 하나의 작은 외국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뉴금호타워를 끼고 넓지 않은 골목을 건너자 러시아어로 써진 우체국, 옷가게,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가 나타났다. 중앙아시아인의 집단 거주지인 이곳은 실제로 150여 개의 식당, 식료품점, 무역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곳의 많은 식당이 ‘사마르칸트’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관광지이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에 걸쳐있었기에 교역중심지로서 많은 번영을 누렸는데,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문화의 용광로’라 불리기도 했다.
 
  이 점들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왜 그들이 사마르칸트라는 이름으로 개업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네팔 거리의 구룽씨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식당이 단지 밥 한 끼를 해결하는 곳이 아닌 그들의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 전파의 최전선이 되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다른 문화를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의 확장을 넘어서 생각의 확장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통해, 그들의 생애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해 공감할 때 우리는 한층 성장한다. 이를 위해 많은 젊은이가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해야 할 일, 해야 할 공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소개한 장소들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만 시간을 내서 친구들과 해외로 산책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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