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불편하게 했던 점들이 있었던 것 같네요.’ 얼마 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확신했던 남성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서로를 알아가고자 했던 호기심은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조용히 사그라졌고 이제 그와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내가 불편했다고?’ 맹세코 남에게 가장 친근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여겨왔던 터라, 순간 얼이 빠져 버렸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건대, 사실 잘생긴 외모와 스펙, 매너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가 좋았다. ‘배려심을 가득 담은 나의 말과 웃음이 불편했다니,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해!’ 억울한 마음에 분노로 가득 찬 장문메시지의 전송버튼을 몇 번이고 눌렀다 뗐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곧 다른 의문으로 번졌다. ‘나는 진짜 남에게 불편한 사람일까?’.

학기가 시작되고 여론부장으로서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 꼭지의 기사를 매주 연재 중이다. 생면부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선배와의 대화는 늘 어려웠지만 나름 친화력을 발휘해 서로에 대한 거리를 좁혔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훈훈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거나 귀한 식사자리에 초대받기도 했으니까.

초능력자도 아닌데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 누군가가 겪어온 20년의 인생 이야기를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2면에 담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도 같았다. 반드시 솔직한 이야기가 담기라는 법도 없었다. 인터뷰이가 자신의 경험담을 미화시켜 포장한다면 그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뻔한 말이지만, 이럴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진심’이다.

상대 남성을 만나는 동안에도 마음속에는 늘 ‘이 남자가 바람둥이는 아닐까?’라는 의심과 ‘내가 더 많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는 계산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상대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는 섣부른 짐작도 했다. 한 인터뷰이에게 ‘기자님의 질문은 마치 정해진 답변을 의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이유의 기저에는 결국 ‘진심’이 쏙 빠진 채 계산적인 태도로 다가갔던 내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번호에 만난 백홍종 촬영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다. “촬영하는 이를 업신여기거나 속이려는 마음이 있다면 카메라에 좋은 영상을 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 진심은 늘 진실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감정이 쉽게 얼굴에 드러나는 나의 본심을 상대가 느끼지 못했을리 없다. 인위적인 웃음과 가식적인 호응 뒤에 숨겨둔 나의 ‘불편함’을 나보다 상대가 더 먼저 눈치 챘을 것이다.

신문사 생활의 끝이 보인다. 지금까지 총 6명의 동문을 만났지만 기사들은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던것 같다. 시인, 정치인, 조각가…. 중간고사가 끝난 후, 부지런히 만나야 할 이들이 아직 많다. 차곡차곡 쌓아왔던 신문사의 원고들만큼 차근차근 남은 인터뷰의 준비를 해나가야겠다. 반드시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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