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님께.

 어제 전화를 받은 이승하 교수입니다. 강의 직전이라 질문하신 내용에 자세히 답변 드리지 못하고 ‘나중에 전화를 드리겠다’며 끊었지요. 마침 중대신문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은 김에 못다 드린 말씀을 마저 해드리려 합니다. 안 그래도 자녀를 ‘문예창작전공’에 보낸 것이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터에 요즈음 중앙대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자 근심이 깊어져 전화를 해 오신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녀분이 선택한 학과는 취업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하지만 졸업 후 2년 정도 지나면 80%가, 3년 정도 지나면 100%가 취직해 있습니다. 바로 취직하지 않는 이유는 등단을 해보고자 졸업 후 직장 문을 두드리지 않고 학원 강사를 하거나 번역, 교정, 사외기자 등 재택근무를 하면서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2,3년 정도 지나면 방송국 구성작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판사 편집부원, 잡지사 기자, 기업체 홍보실 직원, 편집대행회사 사원, 각종 언론 매체 종사자가 되어 있습니다. 중앙대 문예창작전공 졸업생 중 현직 국회의원과 중앙일간지 논설국장도 있고 텔레비전 드라마 ‘징비록’의 작가가 있다면 놀라시겠지요? 한국의 대표적인 두 문인 단체인 한국 문인협회 전 이사장과 한국작가회의 현 이사장이 ‘문예창작학과’ 출신입니다. 훗날 취업을 못 한다면, 자제분이 문학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과거제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시나요? 중국을 본받아 처음 실시한 것이 고려 광종 9년(958년)이었습니다. 문예창작 능력으로 문관을 뽑는 제술과, 유교 경전 해석력으로 문관을 뽑은 명경과, 의술겧熏?산술 등을 시험하여 기술관을 뽑는 잡과가 있었는데 제술과는 주요 과목이 시 쓰기였습니다.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으니 천 년을 지속했습니다. 우리 조상이 文곝?哲을 높이 생각했던 것은 그것을 잘 알아야 치세의 원리, 즉 법률시행과 세금관리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을 원님은 형리에 세리, 학자였습니다. 문겭?철은 사람의 도리를 알게 하는 학문이었던 것입니다.

 서구 문화의 두 기둥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신화를, 헤브라이즘은 성서를 모체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칩니다. 그리스로마신화와 성서는 수많은 문학작품, 건축물, 그림, 영화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신에게 인성을 부여한 치열한 드라마이며, 성서는 인간의 본성과 죄, 금기에 대한 질문을 안고 있는 대서사시입니다. 우리도 수많은 민담, 설화, 전설, 신화를 갖고 있으며 민간종교와 불교의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화엄경』과 『삼국유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입니다. 문화콘텐츠를 무궁무진 개발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동시대는 물론 이후 세대들에게도 감동을 전하는 공부를 하는 곳이 ‘문예창작전공’입니다.

 학부형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자제분은 학과를 잘 선택한 것입니다. 인문학과 예술이 중앙대를 살릴 것입니다. 

이승하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