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생이지만
집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단아
 
 

PM 11:20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따르면 행복한 가정은 그 이유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많은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돼야 하지만 일부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불행한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부러울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만의 사정으로 삐걱거리는 가정을 찾을 수 있다.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남학생을 도서관 앞에서 만났다.

-어느 학과 학생인가.
“의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공부를 잘했나 보다.
“수능 날 유난히 운이 좋았던 덕도 있지만 집안 환경 때문에 남들보다 공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서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
-어떤 집안 환경인가.
“부모님이 스파르타식으로 공부를 시켰다. 많이 힘들었는데 대학에 오니까 그나마 살 맛을 느낀다.”
-벤치에 오래 앉아 있는 모양이 생각이 많아 보인다.
“성적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의대생도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나.
“성적 고민을 안 하는 대학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웃음)”
-성적이 낮은 이유는.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해서 정신없이 놀아버렸다.”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걱정하는 건지.
“나는 학점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의대는 3학년 전까진 딱히 성적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부모님이다. 내 성적을 보시곤 노발대발하고 계시는 상황이다.”
-용돈이 끊기는 건 아닌가.
“용돈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부모님께서 다음학기 방값을 안 내 주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부모님께 싹싹 빌어야 하겠다.
“비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이번 방학까지 한자 3급 자격증을 따는 조건으로 간신히 협상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입학 후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게 생겼다.”
-부모님이 엄하신 편인가.
“학창시절에 혼나지 않았던 때보다 혼났던 적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속된 말로 두들겨 맞으면서 공부를 했다.”
-자식의 공부에 대한 열의가 크셨나보다.
“대단하시다. 위로 형제들이 있는데 다들 인재들이라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를 다녔다. 나는 집안에서 발톱의 때 정도에 불과하다. 항상 비교를 당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장학금을 받기엔 성적이 많이 모자라나보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학점을 두 배로 올려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까지 꼭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문제로 부모님과 마찰을 빚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부모님은 내가 돈을 노는 데에 많이 쓴다고 생각하신다. 나름 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 사용하는데 말이다. 일반적인 부모님이라면 용돈을 직접 버는 아들을 대견해 했을 것이다.”
-관계를 개선할 방법이 있지 않겠나.
“체념했다. 내가 늦둥이다 보니 세대 차이도 많이 나고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부모님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지.
“고등학교 때는 부모님과 싸우는 일이 잦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름의 소통이었는데 대학교에 오고 나서는 그마저도 단절된 상태다. 이제는 잔소리를 해도 그냥 듣기만 한다.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임을 깨달았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중에 의사가 돼서 돈을 벌어야 인정해주실지….”
-고민거리는 누구와 얘기하나.
“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집에서는 동생과 대화를 많이 한다. 위로 있는 형제들도 왠지 나를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만든 원인처럼 느껴져서 불편하다.”
-동생과 대화는 잘 통하나.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말이 통한다. 동생도 나처럼 집안의 이단아나 다름없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서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며 고민을 나누곤 한다. 물론 고등학생이라 조심해야 하지만(웃음).”
-다음학기부터는 공부를 할 계획인가.
“별다른 수가 있겠나. 부모님 때문이라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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