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의 필요하나 학생·교수 모두 어려움 겪어
학생 이해도 높이고 영어가 장점이 되도록 운영해야
 
 “지난학기에 비해 많이 늘었죠. 결국 수업 6개 듣는데 4개가 영어강의에요.” 이소희 학생(가명·사회대)은 수강신청 장바구니를 보고 갸우뚱했다. 강의 목록만 봤을 때부터 영어강의가 많아졌다 했더니 이번학기 신청한 수업의 반 이상이 영어강의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소희 학생이 속한 학과는 영어강의 수가 지난학기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영어강의가 많아지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각종 대학 평가에서 ‘국제화’는 대학에 점수를 매기는 하나의 지표다. 때문에 많은 대학들은 지표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며 그중 하나의 방편이 영어강의 늘리기다. 영어강의가 눈에 띄게 늘어난 지금, 중앙대의 영어강의를 진단해봤다.
 
 수치로 살펴보는 중앙대 영어강의 현주소= 중앙일보도 영어강의 수를 대학 평가의 지표로 삼고 있다. 2013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10점을 만점으로 하는 ‘영어강의 개설’ 지표에서 서울캠은 10점, 안성캠은 7.1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육여건이나 교수연구 지표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점수다.
 타대에 비해 영어강의 지표의 점수가 높은 이유로는 영어강의 의무 개설 기준을 꼽을 수 있다. 중앙대는 2011년부터 학과별로 매 학기 개설강좌의 30% 이상을 영어강의로 개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이후에 임용된 신임 교원은 매 학기 한 과목 이상 영어강의를 열어야 한다. 다만 국어국문학과, 제2외국어학과, 의학부, 간호학과는 예외다.
 2014년 1학기를 기준으로 전체 75개 전공 및 학과·부 중 25개를 제외한 50개의 전공·학과·학부가 의무 개설 기준을 따르고 있었다. [인포그래픽 참조] 지난학기 중앙대에서 가장 영어강의 비율이 높은 학과는 융합공학부다. 35개의 개설 강의 중 33개가 영어강의로 그 비율은 94.3%에 달했다. 다음으론 수학과가 87.5%, 에너지시스템공학과가 76.9%의 영어강의 비율을 기록했다. 이공계열에 영어강의가 집중적으로 개설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어는 쏙 빠진 ‘영어’강의= 중앙대는 2011년부터 영어강의를 A형과 B형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A형은 100% 영어로, B형은 50%만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다. 그러나 강의?과제?시험문제?교재를 100%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A형 강의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영어A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강의에선 영어가 사라지기도 한다.
 조우근 학생(가명·공대)의 학과는 영어강의가 전체 강의의 50%에 육박한다. 영어강의가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조우근 학생은 “대부분 영어A 강의라도 한국어로 강의하는 경우가 많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우리 학과는 전공 용어가 거의 영어라 용어만 영어로 쓰고 강의는 한국어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공계열은 수식이 대부분이고 영어 용어만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강의 자체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재휘 학생(가명·경영경제대)은 영어A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진행되지 않아 더욱 좋았다고 했다. 그는 “일부 영어A 강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반반 섞어서 쓰시거나 아예 영어를 쓰지 않기도 한다”며 “한국어로 강의하니 이해가 잘 돼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요즘엔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엔 영어 강의라고 해놓고선 영어가 쓰이지 않는 강의가 매우 많았다”고 했다.
 지난학기 유지영 학생(가명·사회대)은 전공필수인 영어A 강의를 재밌게 들었다. 수업 2주차에 외국인 학생이 없는 것을 확인한 교수가 그 후론 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유지영 학생은 “교수님이 한국어로 말씀하시면서 ‘내가 쓰고 있는 건 영어’라며 학생들에게 한국어로 수업하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했다”며 “한국어로 강의했기 때문에 교수님의 재치가 더욱 돋보여 수업이 훨씬 재밌었다”고 말했다.
 
 수업 이해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영어= 영어강의는 다양한 이유로 학생들의 기피대상이 되지만 영어 그 자체가 수업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학생들은 몇몇 수업에 대해 영어로 운영되지 않아도 생각하거나 한국어로 수업하면 훨씬 더 이해하기 편할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몇몇 영어강의는 영어로 진행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쪽은 주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었다. 인문대의 역사학과와 철학과, 사회대의 공공인재학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사회복지학부, 신문방송학부, 정치국제학과 등의 학생들은 수업을 이해하는데 영어가 오히려 방해된다는 반응이다. 김이현 학생(공공인재학부 3)은 “지난학기 <조사방법론>이라는 수업을 나는 한국어, 친구는 영어로 들었는데 영어강의는 그냥 외우는 게 전부였다”며 “이 수업은 한국어로 배워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과목이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역사학과의 경우 한국사, 신문방송학부의 경우 저널리즘의 역사, 정치국제학과의 경우 고대정치 등의 분야는 한국어로 배우는 게 좋다는 것이 학생들의 의견이었다.
 이공계열 학생들도 몇몇 강의는 영어가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입장이었다. 정영진 학생(컴퓨터공학부 3)은 “수학 과목 중 <수치해석>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학생들이 선형대수학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려운 수업이다”라며 “게다가 영어로 들으니 더욱 어려워 굳이 왜 영어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영어로 이해가 어려운 과목의 경우에는 한국어 강의를 동시에 개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치국제학과의 한 학생은 “영어 과목의 개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동일 과목의 한국어 강의도 열려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현 상황에서의 영어강의 운영은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자발적 포기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화, 취지는 시들다= 본래 영어강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그러나 국제화 ‘지표’를 목표로 영어강의가 양적으로 늘어나자 질적인 부분이 양적인 부분을 따라가기 힘든 상태가 됐다. 교수와 학생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영어강의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강윤서 학생(가명·사회대)은 힘겹게 영어강의를 들었던 경험을 회상했다. 강윤서 학생은 “교수님께서 수업은 잘 해주셨으나 억지로 영어강의를 하신다는 느낌이 있었다”며 “나중엔 교수님께서 ‘영어강의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업에 비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도 낮았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강의 수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교수와 학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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