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학과 2학년 1학기 수업 중 “단막극”이란 수업이 있다.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직접 희곡의 인물과 성격, 상황을 설정하고 동작선을 만들어 학기말에 실제 무대위로 옮겨봄으로서 연기의 기본단위인 “인물과 상황”에 대한 표현을 훈련하는 수업이다.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단막극 수업 중 한 팀이 죤 M. 씽크(John M. Synge 1871-1909) 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기사들”은 여섯명의 아들과 남편을 바다에서 잃어버리고 고난스럽지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모리아)와 두 딸(케쓸린, 노라)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엊 그제 제자들과 연습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품의 주제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키는 작지만 똘망똘망한 나현이(동기들 보다 2살이 많다)가 불현 듯 말을 꺼낸다. 나현: 선생님, 전 죽는게 너무 두려워요..미래에는 의학이 발달하니 100살 까지 살 수 있겠죠? 나현이 옆에 앉아있던 늙은 대학생 민정이(동기들 보다 5살이 많다)가 대답한다. 민정: 야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 그리고 넌 종교가 불교잖아… 그러니 다시 태어나면 되는 거 아냐? 이에 뒤질세라 요즘 어머니 역 모리아에 심취해 있던 미경이(현역)가 말을 잊는다 미경: 흐흐… 나현 언니가 “뱀”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좋겠네! 하루종일 기어 다니고 하하하… 내가(40대 중반) 대답 한다 나: 설마…착한일을 많이 했으니 귀여운 햄스터로 태어나겠지!!하하하하… 우린 몇 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삶과 죽음, 인생과 욕망, 슬픔과 기쁨 같은, 이제는 진부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하지만 늘 우리곁에 존재하는 얘기들을 하며 늦도록 연습실 불을 밝혔다.

현역도, 삼수생도, 26의 늙은 대학생도, 이제 불혹을 지난 나도 ‘인간’을 얘기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난 이런 시간을 사랑한다. 아니, 이런 시간을 가 질 수 있는 난 아마 굉장히 행복한 사람일 게다. 연극학과(연극)의 특성상 많은 시간을 제자들과 만나 얘기하고 토론하고 때론 풀리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 내기위해 밤을 꼬박 세울때도 많다. 이래서 ‘연극’은 아직도 인간적이고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학교에서의 연극은 학생들 스스로가 무대장치부터 공연까지 모든 작업과정을 손과 발로 해내야 한다. 때론 좌절하고 튀어나가고 포기하려 하지만 조명이 켜지고 막이 올라가면 그들은 다시 인간의 삶과 죽음, 인생과 욕망, 슬픔과 기쁨 그리고 또 “희망”을 얘기한다. 내일 연습실에서 민정이가 문뜩 “선생님, 사랑이 뭐예요?” 라고 물어보면 어떻게하지? 벌써부터 초롱초롱한 민정이, 나현이, 미경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난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백남영 공연영상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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