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주었던 대기업의 잇단 부도 사태. IMF의 매서운 칼날에 그간 부실운영을 했던 많은 기업들이 대거 쓰러졌다. 그 대표적인 요인이 바로 어음제도. 어음이란 기업이 생산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신용으로 대금지급을 늦추는 역할을 하는 것. 우리 사회에서 어음의 하루 교환액은 10조원으로 총 통화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이 유통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 나라에서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요인은 무엇일까.

“어음제도는 우리 나라에서 기형적으로 거대화된 제도에요. 이 제도에 관한 연구는 예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것으로, IMF 사태가 터지고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하게 되자 더 심도있게 연구를 시작하게 된거죠.”

어음제도의 문제점과 대안방안을 연구하고 있는 서헌제 교수(법대 법학과).

서교수는 어음제도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요인을 기업계열화된 사회에서 찾는다. 즉 ‘재벌’이 사회를 움직인다는 것. 이런 한국사회에서 어음제도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노비문서’밖에 되지 않는다고.

“우리 나라에서의 어음은 만기일이 상당히 긴 데에다 대금지급의 지연도 심해요.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돕는 것이 어음할인인데 은행 역시 자금난에 허덕이다 보니 할인도 안해주려 하는 경우도 많구요”

더구나 어음을 과대발행한 대기업이 도산을 하게 되면 밑의 하청업체들이 연달아 연쇄도산하기 때문에 어음의 문제점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어음보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1%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폐해는 갈수록 늘어가자 어음제도를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미 2000년부터 없애자고 법안도 올라가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서 서교수는 그다지 찬성하는 기색이 아니다.

“동맥경화 환자에게 잘못됐다고 혈관을 잘라낼 수는 없지 않겠어요? 더구나 경제활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대안을 마련해 가면서 감축하는 방안을 고민해야죠. “

경제적 혼란을 고려하며 어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 어음할인확대, 팩토링(factoring) 등 매출채권의 유동화 기법 도입, 어음만기기간 제한 등이 바로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예전 어음제도와 관련된 공청회엘 갔을 때, 한 중소기업 분이 나와서 거의 한에 맺혀 울분을 토하는데 안타깝더라구요. 그때 어음제도가 후진성을 지닌 경제의 대표적인 낙후제도라고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더 안타깝기만 하네요.”

무관심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서교수. 관심어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는 그에게서 행동하는 학자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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