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을 위한 Cultural Festival. 모닥불은 활활 타오르고 모두가 분위기에 한껏 취한 가운데 팔십 명의 외국인들이 너를 둘러싸고 있다. 원 안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너는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누구도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럴 때 너라면, 어떤 노래를 부르겠어?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캔디 춤 춘 이후로 말이야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건 처음이야. 정말 바지에 오줌 쌀 뻔…… 했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내 차례까지 오겠나, 싶었거든. 핀란드 애들이 나와서 전통 민요를 불렀을 때만 해도 분위기 괜찮았다고. 그 뒤를 이어서 스웨덴 애들이, 독일 애들이, 프랑스 애들이 줄줄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도 아무 걱정 없이 덩달아 신나 있었지. 서른 명이나 되는 미국 애들이 팀을 짜서 동요를 부를 때도 따라 부르며 웃고 말았어.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체코 리퍼블릭…… 이렇게 지구를 돌다 밤은 깊어지고 축제는 끝나리라 생각한 거야. 그런데 순간 누군가 소리치는 거야. KOREA! KOREA! KOREA! 정말 순간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 OMG!! (Oh My God)

  원 안으로 들어서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뭐가 좋을까. 원더걸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사지가 열두 조각으로 부서져버릴 것 같았어.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단 하나의 노래. “The song I'm going to sing is a korean love song. It means don't go baby, you're going to die without me.'” 아리랑 고개의 그 심오한 문학적 정취를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한 나를 용서해. 심지어 처음 가사는 생각나지도 않더라. 그래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부터 시작했지. 높은 음부터 시작해서 그랬는지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엄청나게 떨리는 거야. 그런데 은근히, 그게 뭐랄까 한국 전통 창법 같았는지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그 호응에 힘입어 에라 모르겠다, 춤까지 춰버리자 하면서 다시 생각해봐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전통 무용을 추기 시작했지. 아리랑 후렴구에 맞춰. 뭐든지 새로운 건 시도해 보길 좋아하는 유럽 애들이 그 춤을 따라하며 ‘아리랑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그때 문득 하늘을 쳐다보게 됐는데 정말 별이 많더라. 그 수많은 별들이 내 얼굴 위로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어. 그때 있잖아, 갑자기 정말 슬퍼지는 거야.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리랑…… 정말 슬픈 노래더라.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오후 늦게 수업 끝나고 청룡탕 근처를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괜히 외롭고 그랬는데. 특히 교양학관 앞에 낙엽이 질 무렵이면 정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기분이었어. 어떻게 번역을 해야, 이 아리랑 고개가 주는, 말로 다 못할 애틋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떨리던 내 목소리와 어설프게 팔을 움직이던 내 춤으로 후렴구에 맞춰 긴 팔을 흔들던 유럽인들의 마음에 이 가사가 아주 조금은 전달될 수 있었기를 바라며.

 

김보람(문과대 국어국문학  4 University of Botswana 교환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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