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살다보면 한두 가지 취미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취미는 축구다. 하는 일이 정적인 그림인데 취미는 반대로 과격하다. 어릴 때부터 구기 종목 중 아기자기한 농구보다는 스케일이 큰 축구를 좋아했다. 격렬하다 보니 가끔 다친다. 10여 년 전 3·1절. 축구하다 발목을 심하게 다쳐 1학기 내내 절뚝거리며 다녔다. 문창과 전영태 교수는 “3·1운동을 너무 과격하게 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주위에선 나이를 생각해서 이제 다른 운동을 하라고 충고를 하지만 난 요지부동이다. 그 이유가 철이 덜 든 바도 있겠지만, 신체건강보다는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공만 쫓다 보면 잡다한 것들로 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말끔해진다. 뒤집어보면 나에게 축구는 휴식이며 삶의 여백이다.
 

  축구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기본기의 중요성이다. 대학시절 축구대회가 열리면 학과대표로 출전했다. 라이트 윙에서 뛰었는데, 코너킥을 찰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상당한 부담을 느끼곤 했다. 야생마처럼 운동장을 내달리기만 했지 축구의 기본인 킥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나의 코너킥은 들쭉날쭉했다. 이럴 때 속으로 제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코너킥을 차길 속으로 빌었다. 운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잘못 차면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후 결혼을 하고나서 동네 조기회에서 축구의 기본기를 배웠다. 기본기부터 터득하고 나니 전보다 더욱 재미있어졌다.

  축구만큼이나 그림에서도 기본기는 중요하다. 내가 맡은 1학년 수업 중에 기초 동양화가 있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동양화가로서 지녀야할 기본기를 배운다.

  항상 맨 첫 시간에 들어가서 하는 질문은 중봉과 편봉의 개념이다. 붓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웠는지 알아볼 때 하는 질문이다.

  중봉 필법은 선을 칠 때 붓 끝인 봉이 선의 중심을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붓을 똑바로 세워 그리면 봉이 선의 중심을 지나게 된다. 반면 편봉 필법은 봉이 선의 가장자리를 지나가게 하는 기교적인 필법이다. 중봉선의 느낌이 입체적이면서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면, 편봉선은 평면적이면서 화려하고 경쾌한 기교가 느껴진다. 이를 굳이 축구의 킥에 비유하자면 중봉선이 발등으로 차는 인스텝 킥이라면, 편봉선은 발의 가장자리로 차는 사이드 킥이다. 멋진 바나나킥에 힘이 실리려면 인스텝킥을 잘 해야 가능하다. 축구에서처럼 그림에서도 편봉선이 아름다우려면 그 바탕에 중봉선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한다.

  그림에서 큰 기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 않으니 소홀하기 쉽고 터득하기도 훨씬 어렵다. 힘이 바탕이 되지 않는 아름다움은 표피적이고 가벼울 수밖에 없다. 붓을 똑바로 세울 수 없다면 필묵에서 깊은 울림이 나오질 않는다. 깊은 울림이 없으니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니 죽은 그림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중봉 같은 묵직한 진정성은 항상 감동적이다. 멀리 나가서 크게 이루려면 기본에 충실해야한다.

김선두 예술대 한국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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