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진심을 타인에게 고백하는데 실패한다. 인간의 마음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백은 의도에 상관없이, 어떤 코드들에 의하여 차단되고 왜곡된다. 인간이란 그것을 견딜 수밖에 없는 슬픈 족속이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으로 창작된 모든 텍스트들은 ‘실패한 고백’일 수밖에 없다. 문학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고백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위안과 구원을 선사한다.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실패를 예감하는 아픈 행위로 다가온다. 그것은 사랑처럼,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많은 텍스트들은 묘한 설득력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고백의 언어가 자신을 타자로 바라보는 이중의 겹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그러하다. 이 소설은 고백의 실패에 대해, 다시 고백함으로써 진정성을 획득하는 고통의 텍스트이다.
문학잡지 기자가 ‘박부길’이라는 작가를 취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기자는 작가가 걸어온 삶의 이력을 소설과 관련시키려는 의도로 박부길의 과거를 묻는다. 박부길은 머뭇거리며 자신의 훼손된 유년과 사랑에 대하여 털어놓는다.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를 떠나 재가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박부길은 큰 아버지에게 맡겨진다.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박부길은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다. 박부길은 타인에 대한 마음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가둔다. 현실에 대해 전혀 반응할 줄 모르고 무엇 하나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백치의 나날 속에서 박부길에게도 사랑이 다가온다. 교회에서 만난 연상의 여자(종단)을 보고 박부길은 강렬한 호기심과 열정에 사로잡힌다. 박부길은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단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이 사랑의 결말은 예정되어 있다.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이는 타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므로. 대개 사랑은 마음의 진정성이 아니라 표현의 방식에서 파탄나지 않는가. 사랑에 서투른 그는 알 수 없는 열기에 들떠서 집착과 자학을 반복하게 되고, 종단은 점차 그에게서 멀어진다. 부길은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258쪽) 였다고 고백한다.
그의 고백은 계속된다. “그녀는 완전해야 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해야 했다. 그런 관념을 통해 나는 만족을 얻었다. 그렇게 밖에 사랑하지 못한, 그것이 나의 불행이었고, 나의 사랑의 예정된 비극”(261쪽)이었음을. 박부길은 과거로부터 도망치듯이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그 곳도 도피처는 되지 못했다. 신학교의 폐쇄적이며 형식적인 교칙에 염증을 느낀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먼지 쌓인 책 밖에 없었다. 책을 통해서 그는 서서히 자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쓰는 행위가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박부길은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글쓰기를 통해서 그는 사랑의 불가능성을 외려 긍정하고 상처에서 자유로워진다.
아픈 곳으로 기울기만 하는 자학의 편향을 견딘 이후에 고백은 진실해진다. 하지만 고백의 형식을 취하는 모든 글은 실패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랑이 미완성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실패한 고백을 통해서 성장한다. 고백이 미완성인 까닭은 화자와 청자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음에 있다. 마음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고백은 과거와 화해하고 다시 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작품이라는 고백을 읽는 독자(비평가)가 아닐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구원하는 작가와는 달리 그것을 읽는 자는 무엇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까. 작품을 읽는 우리의 내면에 파생되는, 고백할 대상이 부재할 때 생기는 균열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 타인의 고백(작품)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좁혀질 수 있을까. 좋은 작품은 이러한 균열과 거리를 인식하게 만들며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이야기(고백)를 듣고 싶게 만든다. 미완성인 고백을 완성하는 것은 고백을 듣는(읽는)자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서로의 고백을 완성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상처는 그렇게, 치유된다. 그러면서 생의 이면은 펼쳐질 것이다.

내가 참으로 원했던 것은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동질의 원형질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동료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 이 껍데기의, 그림자만의 세계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내가 발견하고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내밀한 지하의 세계를 대화로, 마음으로 누리는 것이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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