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혀요.’ EBS의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이하 한문페)’를 애청하던 청취자 ‘simdolji’씨가 프로그램이 종영된 뒤 남긴 글이다. 요즘 방송사 편성표를 보면 시청률 효자프로그램만 넘처난다. 교양프로그램의 폐지행진은 지난해 12월 SBS의 ‘금요컬처클럽’을 시작으로 올해 초 KBS ‘TV 책을 말하다’에 이어 지난달 EBS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로 이어졌다. 이는 교양프로그램의 폐지행진이 단순한 프로그램의 존폐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운동에도 불구 방송사 폐지 강행

 

사전 공지도 없던 상황에서 KBS의 ‘TV 책을 말하다’는 지난 1월 1일, ‘방송을 종료합니다. 그동안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자막 한 줄로 8년간 방송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문페’는 올해 1월 말부터 폐지설이 나돌기 시작해 애청자들이 반대운동을 펼쳤다. 방송사에서는 한 때 EBS의 간판 프로그램이라며 ‘한문페 5주년 행사’에 뷔페를 꾸며 공개방송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EBS는 ‘한문페’에게 퀄리티를 이유로 방송을 중단할 것을 통보했다. 한문페의 폐지이유가 프로그램 퀄리티라는 데에 성난 애청자들이 ‘한문페를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대학로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지난달 9일부터 13일까지는 ‘EBS, 너마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여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문페는 지난달 28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한문페 폐지 반대 운동을 주최하고 나선 신명숙씨(37·직장인)는 “한문페를 문화·역사의 의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남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시위 경험자도 문화관련 종사자도 아니었던 그녀는 갑작스런 폐지 소식에 놀라 1인 시위를 준비하게 됐다고 한다. “방송이 종결된 뒤 허탈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지만 방송계 현실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위의 의미를 둔다”고 전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애청자들과 뜻을 같이 하고 방송사의 압박을 받지 않는 진정한 문화프로그램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교양프로는 간접적 문화생활 제공

 

 

현대인들에게 교양프로그램은 소통이다. 교양프로그램의 시청자나 청취자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지만 피곤한 몸으로도 챙기고 싶은 것이 교양프로그램이다. 연예인 신변 잡기나 단순한 재미를 위한 선정적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몇 안되는 교양프로그램은 문화로서 우리에게 감동과 재미·정보를 준 것이 많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교양프로그램은 다양한 작품소개와 문화활동, 컨텐츠를 전달해주는 매개이자 길라잡이 역할을 해왔다”며 “특히 초대권을 통한 연극관람 유도나 접하기 힘든 전시회장을 소개함으로써 문화의 장으로 직접 인도해 주는 계기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교양프로그램이 문화 갈증을 해소해 주는 물꼬 역할을 해온 것이다. 또한 젊은이들이 주가 되는 방송에서 장년층의 의미 있는 여가선용 도구로써 역할을 해왔다. 교양프로그램은 바쁜 일상에 문화 접근권을 확보해 주었고 진정한 여흥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암묵지가 되어줬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나 EBS같은 경우에는 상업성 논리에서 벗어나 문화적 공공재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강진숙 교수(미공영대 신문방송학부)는 “공영방송은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니 미디어 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공영방송은 존속돼야 한다”며 “미디어 교육에 이바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편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성표의 사각지대에 던져놓은 교양프로그램에 시청률이나 청취자의 충성도를 운운하는 것 또한 문제다. 김헌식씨는 “문화·교양프로그램의 폐지는 공영성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어려운 문화·교양프로그램 시청률은 수용자의 소양이나 훈련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며 교양프램 폐지를 비판했다.

정혜라씨(서울대 법학과 2)는 “교양프로그램의 폐지는 종국적으로 오락과 유희의 선정적인 프로그램의 확장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며 “순수 문화를 접할 수 있고 꼭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청년세대들은 미디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냐”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방송의 기능 중 하나는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교양 수준을 확장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교양과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해당 방송사들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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