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내가 세미나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혈액형이 O형일 것이라고 했다. 여자 후배는 다혈질이라며 B형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이는 평소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A형이라고 했다. 혈액형 성격론은 모순적인 경우가 많다. ‘당신은 O형이기 때문에 활달하지만, 다소 소극적일 때가 있다.’ 아무리 활달한 사람도 소극적일 때는 있다. 거꾸로 아무리 소극적이어도 활달한 면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소심하거나 다혈질이라는 판단기준도 모호하다.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을 물어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처음 대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을 단정해 버린다.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한다는 합리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몇 개의 정보로 전체를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다. ‘인지적 구두쇠’ 현상이다. 순간적으로 간파해 내는 능력을 논한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 이론도 오랫동안의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가능하다. 혈액형 성격론은 정보의 단초를 제공해준다고 여기기 힘들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바넘 효과’(Barnum effect)로 볼 수 있다.

 

 19세기말 서커스 공연 중에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을 알아맞히던 바넘(P.T. Barnum)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를 증명한 것은 1940년대 포러(Bertram Forer)였다. 학생들에게 별자리를 물어본 다음 각 개인에게 운세 결과를 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너무 정확한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문에 있는 내용을 뒤섞어 전달한 것일 뿐 각 개인의 별자리운세 분석과는 관련이 없었다.

 

 혈액형 성격론이나 점술에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이 있다. 모호성과 추상성이다. 모두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이다. 점쟁이들은 절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며 짧게 끊어서 키워드만 이야기한다. 또 단순하다.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는 몇 가지가 안 된다. 직장, 건강, 연애-결혼, 성공 등이다. 눈썰미 있는 점쟁이들은 손님의 행색을 보고 고민의 주제와 인생 이력을 꿰뚫는다. 혈액형 성격론도 모호하고 자세하지 않다.

 

 혈액형은 과학자들이 지적하듯 성격과는 관련이 없다. 혈액형 성격학은 이미 유럽에서는 사라졌고, 1980년대 노미 도시타카 때문에 일본과 한국에만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점이다. 시간을 들여 지내보지 않고 사람을 안다는 것은 환상이다.

김 헌 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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