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간 대중음악계의 현안 중의 하나는 ‘라이브 클럽 합법화’ 문제였다. 논란의 초점은 ‘식품위생법 시행령의 개정’이었는데, 현행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의하면 라이브 클럽은 ‘일반 음식점’ 허가를 취득하게 되어 있고, 일반음식점이란 “식사와 함께 부수적으로 음주 행위가 허용”되며, “안락한 분위기 제공을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자 1인만 허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2인 이상의 그룹이나 밴드가 연주했던 라이브 클럽은 ‘불법’으로 운영된 셈이다.

라이브 클럽을 둘러싼 난기류

그런데 클럽 합법화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부터 미묘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라이브 클럽의 합법화가 ‘연주인 수 제한 조항’의 삭제로 그친다면 세제 혜택을 노린 ‘대형 라이브 클럽’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힘겹게 운영해 오던 영세한 라이브 클럽들은 시장원리에 의해 도태하여, 새로운 법령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것이다. 라이브 클럽은 ‘보호’를 요구하고 있지만 ‘반응’은 없다.

클럽 합법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라이브 클럽의 ‘성격’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듯하다. 이 논란은 공연 문화, 나아가 음악 문화 전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 차이를 드러낸다. 언더그라운드든 아니든 대중음악의 경제적 가치만을 인정하고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취한다면, 대중음악은 ‘상업적 음악’이므로 규제와 단속의 대상일 뿐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이런 시각이 클럽 합법화를 가로막아온 대한민국 정부의 지배적 시각이었다.

‘선진국’과 ‘대한민국’

‘선진국’은 어떠한가. 그곳에서도 음악산업은 여타 문화산업에 비해 ‘자유시장’의 원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렇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방송법이나 저작권법처럼 대중음악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장치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직·간접적 지원정책을 실시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지원은 이미 일정한 성공을 거둔 대중음악인의 법적·경제적 권리(rights)를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이 생산되는 기층의 제도 및 시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준수하는 정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대중음악의 ‘수출경쟁력’이 높다는 점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 예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대중음악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존재하고, 정부는 이들 민간단체에게 국고보조를 해준다. 네덜란드의 SPN, 덴마크의 ROSA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단체다. 정부 보조의 근거는 “창조적인 자기표현과 삶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를 형성해준다(즉,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는 아주 ‘추상적’인 이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두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수출국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거의 ‘특혜’에 가깝지만 이를 문제삼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각국의 대중음악의 성격이 음악인들의 창조적 활동 못지 않게 ‘제도와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는 문화산압이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세계시장에서 ‘최후의 승부처’라는 말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스타 시스템’과 그 한계

이상의 이야기는 한국의 상황을 돌아볼 때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음악산업에서 자국음악(이른바 ‘가요’)의 비중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국내 음악을 보호했던 일은 명시적으로는 없었다. 대중음악과 관련된 정책이 있었다고 한다면, 음반 사전심의제로 대표되는 검열과 금지가 전부였고 이는 국내외 음악을 막론하고 이루어졌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한국의 음악산업은 ‘보호되지 않은 자유시장’의 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현재의 체제는 1980년대 후반으로 소급된다. 다국적 음악기업이 ‘직배사’로 국내 진출을 시작한 이 무렵 방송사는 ‘팝송’의 비율을 줄이고 ‘가요’의 비중을 높였고, 라디오 방송진행은 전문 DJ로부터 브라운관의 스타로 대체되었다. 이와 동시에 저작권 로열티 ‘개념’이 발생하면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매니저’라는 인물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들의 활동이 현재의 ‘기획사(라기 보다는 토털 매니지먼트사)’의 모태가 되었다. 저작권협회와 노래방협회가 중요한 이익단체로 부상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그 결과 한국의 대중음악은 양적으로 팽창한 뒤에도 중앙집권적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폐쇄회로 속에서 작동하는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정부에 의한 보호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폐쇄성의 정도는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 끊이지 않는 표절 시비는 이런 폐쇄된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지만 스타 시스템은 고유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곡비’관행(판매량에 비례하는 로열티가 아니라 일정액을 지급하는 관행)에 따라 고정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며, 방송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제작비를 능가하는 홍보비가 소요되는 점 등은 어떤 식으로든 개선되어야 할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불법 복제음반의 유통, 음반 판매량의 불투명성 등의 전통적 고질병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경기침체로 따른 시장위축이라는 대내적 문제와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대외적 문제 앞에서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제도,정책적 대안들

저작권법을 비롯하여 관계법들과 제도들을 정비해야 하는 것은 단지 ‘국제 수준에 맞출 필요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현재의 폐쇄된 체제의 개방은 단지 산업적 활동의 개방이 아니라 문화적 행동의 개방, 즉, 대중음악 생산자와 수용자의 ‘감성의 개방’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은 ‘미리 만들어진 음반의 생산과 유통’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정비만으로 불충분하다. 음반이라는 형태를 취하기 이전에 대중음악이 창조되는 기층의 하부구조(이른바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별도의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대중음악이 생산되는 과정은 하부구조가 없는 역피라미드형이다. 음악인을 지향하는 사람이 오랜 수련을 쌓지 않고 ‘단기간의 피나는 연습에 의해 한번에 중앙 무대에 뜨려는’ 관행은 분명 기형적이다.

라이브 클럽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서 언더그라운드, 인디펜던트 등의 과장된 수사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라이브 클럽은 음악인을 지향하는 청소년이 경력을 쌓아가는 가장 기층의 제도가 되어야 한다. 즉, 라이브 클럽은 운영하는 업주의 ‘경제 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클럽 소속 성원들의 ‘문화 생산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는 비단 클럽 뿐만 아니라 공연 문화(혹은 라이브 문화)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금전적 지원이 곤란하다면 우선적으로 ‘각종 규제의 처례’ 및 ‘제세 부담금의 축소’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식품위생법 시행령 뿐만 아니다. 공연을 성사시키려면 두꺼운 책 만큼의 서류를 요구하는 공연법령, 학교인근에 공연장 설치를 제한하는 학교보건법은 개정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공연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와 10%의 사업소득세, 6%의 문예진흥기금 등 과중한 제세부담금도 대폭 경감되어야 한다.

문화정책과 산업정책

대중음악을 포함하여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은 산업정책이자 문화정책이 되어야 한다. 산업의 논리와 문화적 욕구 사이의 갈등은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시키지 않으면서 양자의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여기서 어떤 시사를 얻는가는 대중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던 1980년대 전반 영국의 셰필드(Sheffield) 지방정부는 그 지역 뮤지션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레드 테이프(Red Tape)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건설했고, 많은 인력을 취업시켰다. 문화정책은 ‘고용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음악과 관련된 재능의 습득(예를 들어 악기 연주나 기재의 엔지니어링)은 ‘직업훈련(job-training)’의 개념으로 추진된 것이다. 스튜디오 건설을 보조해준 정부는 ‘지역의 산업적 기반과 문화적 특징을 창조’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 스튜디오의 운영이나 음악의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셰필드는 영화 <풀 몬티>의 배경을 이루는 쇠퇴한 공업지대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좀 다르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태두’ 카바레 볼테르(Cabarait Voltaire), ‘신디사이저 팝의 거장’ 휴먼 리그(Human League), ‘브리티시 테크노의 선구자’ LFO, ‘베테랑 브릿팝 밴드 밴드’ 펄프(Pulp) 등의 고향이다. 이들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 그룹 하나에 대한 자료가 한국 대중음악 전체에 대한 자료의 10배는 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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