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들지 않은 새 신을 신으면 으레 뒤꿈치가 까지기 마련이다. 바뀌는 것들에 나를 맞추고 때로는 변화를 내가 길들이기도 하는 시간이다. 연도에 3이 아닌 4라는 숫자를 쓰는 데 익숙해지고, 이에 맞춰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 3월 또한 그렇다. 새로운 학기에 바뀐 시간표를 보고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따스해진 햇살과 함께 옷은 점점 얇아진다. 새 옷과 새 책, 이것들만의 낯선 향기가 좋다. 이처럼 ‘새것’이라는 말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중대신문 제2058호 속에는 새 학기를 맞은 학교의 소식들이 실려있다. 새것들을 조명
2023년 8월 한국언론학보의 한 논문에서는 50년간의 한국기자상 심사평을 분석하여 한국 언론이 추구한 저널리즘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에서 꼽은 으뜸 가치는 ‘사회변화 주도’였다. 중대신문도 이와 다르지 않은 가치를 보여주고 있어 고맙고도 자랑스럽다. 종합면의 학내 인권센터 기사와 인권 주제 사설은 ‘당위’로만 외쳐지고 ‘당연’이 되지 못한 인권 보호의 실상을 보여준다. 인권센터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들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에야 ‘발명’한 것이 인권이라 해도 현재의
2023년 2월, 막 성인이 된 나는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해외였다. 선택한 곳은 일본, 그중에서도 오사카와 교토이다.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고등학교 시절 배운 일본어를 현지에서 사용해 보고 싶었다. 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다. 이는 나에게 자립과 독립의 의미를 전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여행 자금을 마련하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나를 덮쳤다. ‘혼자’와 ‘첫’이라는 수식어가 이
요즘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느껴 본 적 있을까? 인공지능을 대표로 하는 기술의 진보,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사회문화적 변화. 챗GPT(Chat GPT)로 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에서부터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 강의실에서 열심히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하지만, 전공과는 별개로 세상의 변화와 그 방향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이번 학기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코딩’은 사회과학 전공자에게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책 표지의 접지를 처음으로 접는 독자가 될 때면, 왠지 모를 쾌를 경험하게 된다. 수직으로 움푹 팬 도랑이 내 손끝에 의해 만수를 이루는 듯한 느낌. 도서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서가가 다름 아닌 신간 코너라는 유치한 취향도 여기서 비롯됐다. 고등학교에 다닐 적이었다. 새 책이었고, 얇고 가볍고 새하얬다. 한국에서 대입을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거 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세뇌의 결과를. 그런데도 읽어보고 싶었다. 새 책이었고, 얇고 가볍고 새하얘서. 글쎄. 교내 레크리에이션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합니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강의를 듣고, 부 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편히 쉴 순 없습니다. 끝없는 과제의 물살에 빠져 허우적대곤 하죠. 모든 일과가 끝난 후 잠자리에 들 땐 이미 날짜가 바뀌어 있기도 합니다.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빠지기도 하죠.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긴 반면, 수면 시간은 가장 짧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노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요. “노동시간에 따른 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까지 셈하기도 어려운 해들을 지나 보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껴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닌 건 맞지만, 나의 마음이 유독 그 사람에게 인색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가 같을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이도 그저 가정의 문법으로 작게 읊조릴 뿐이다. 사랑의 많고 많은 본질 중 하나가 ‘불평등’이란 사실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달았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깨달음의 덤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봤다. 나는 그이의
한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원자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사람인가요?” 저의 대답은 ‘따뜻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요즘 세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요? ” 이어진 질문에는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는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저 ‘따뜻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대가 그저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인지는 더더욱요. 당신은 나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나요? 우리는 가능하신가요.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라는 책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로 ‘그런 세대’는
지난 20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사퇴했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의 이른바 ‘회칼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이다. 14일 황상무 전 수석은 오찬 자리에서 고 오홍근 기자 테러사건을 언급하며 기자들을 겁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대한민국 정부의 한 수석비서관이 군사 정권을 비판한 기자가 칼에 찔린 사건을 들먹인 것이다. 기자를 향해 ‘여당에 적대적인 보도를 하면 똑같은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식의 위협을 가했다. 이 발언은 힘겹게 일궈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상을 얼마나 경시하고
2021년 3월, 「고등교육법」 제19조의3 인권센터 관련 규정이 신설됐다. 해당 규정은 대학인권센터의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함으로써 대학 내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교직원·학생 등 대학 구성원의 인권을 향상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대학인권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국가권익위원회(인권위)가 실시한 ‘대학인권센터 설치 및 운영 현황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대학인권센터가 구성원의 규모를 고려한 최소한의 인력조차 확보되지 않고, 직원의 대부분이 겸직 또는 계약직으로 구성돼 있었다. 대학인권센터 전
지난 호의 중대신문을 살피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신드롬을 다룬 기사를 읽게 되었다. ·부터 까지. 출연자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격렬한 감정에 과몰입하며 재미를 느끼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타인의 감정을 예능으로 손쉽게 즐기고, 화면 속 모습만으로 너무나도 ‘진짜’ 같은 미움·안쓰러움·설레임 등의 감정을 느끼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드라마·영화는 시청자들이 콘텐츠가 가상이라는 전제를 인식하게 한다. 반면 리얼리티는 내가 보는 것이 무조건적인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울타리를 형성해 과몰입
개나리의 꽃말은 개강,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했던가. 움트는 개나리 꽃망울처럼 개강이 왔고, 연이어 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위수여식으로 붐비던 캠퍼스가 어느새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로 북적인다. 새내기 새로배움터, 개강총회 등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추억하거나 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캠퍼스의 인파를 뚫고 나날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한 학생들을 보며 새삼스레 마음이 들뜨는 요즘이다. 개강을 앞두고 명랑한 첫 만남을 준비했다. 강의를 통해 만난 인연이니 나와 마주한 학생들의 마음이 반가우면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끼니’와 관련한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이는 ‘어제의 끼니가 오늘의 끼니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다. 지난 호 중대신문 1면은 ‘점심은 먹고 다니십니까’였다. 중앙인의 숙명과 같은 끼니의 문제를 다루었다. 대안을 모색한 기자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서윤호 기자는 서울대에서 식당 혼잡도를 공유하는 것과 연세대에서 학식 사전주문이 이뤄지는 사례를 들어 혼잡도 개선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에 비
작년 12월 중순, 나는 부대에서 근무 오프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올해 자과대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어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를 진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으니 도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비대면 학번이라 친구도 없는데 좋은 기회이다 싶어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혼자 모든 업무를 진행하기는 불가능하기에 나와 함께 새터를 진행할 친구를 섭외했다. 총학생회, 자과대 학생회의 일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내가 새터준비위원장을 맡고 그 친구는 총새터주체(총새주)를 맡게 되었다. 다양한 견적서를 비교하고, 더 재미있는 컨텐
저는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습니다. 방학을 맞아 용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집 근처 쇼핑몰에 입점해 있던 옷 가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정말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다는 부푼 마음가짐으로 첫 출근을 했죠. 제가 가게에서 처음 한 일은 옷을 개는 것이었습니다. 예쁘게 옷을 개는 방법을 배운 후 손님들이 착용해 본 옷을 개고 또 개고 또 개었는데요. 매장을 돌아다니며 옷을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점점 친해지기도 하고 가게 내부도 눈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최근 인기몰이 중인 가수 비비(김형서)의 신곡 의 가사 중 일부다. 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사랑의 감정을 밤양갱이라는 음식에 투영한 가사로 대중들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가사를 곱씹어 보면 비단 사랑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처럼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바란다. 물질적인 풍족함, 행복한 미래, 누군가와의 사랑 등.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바람은 성취의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그 성취를 위해 분주하게 노력한다.
출판서점계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2024년 예산안이 집행되기 시작했다. 문체부의 예산 칼질에 출판·서점·도서관 모두 칼바람을 맞는 중이다. 출판 부문에선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 사업은 매해 우수 콘텐츠를 선정해 출판사와 저자를 지원해왔으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문체부는 중소출판사를 지원하겠다며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지원’ 사업을 내놨으나 내용은 아직도 구체화 되지 않은 상태다. 서점업계도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지역서점에 대한 지원 예산은 지난해 대비 증액됐다고 설명했지만, 예산안은 출판 유통 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겠다고 밝힌 지 어언 한 달째다. 갈 곳 없는 환자들은 개인병원으로 걸음을 돌리거나 중형 병원 응급실로 분산 수용되고 있는 추세다. 의·정 대치로 인한 의료 공백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다. 문제는 의사와 정부가 물밑 접촉을 통해 대화의 물꼬는 텄으나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2일 서울대 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에게 대화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13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의료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인 콜레스테롤은 음식을 통해 약 30%가 흡수되며, 간에서 나머지 약 70%를 합성하여 만들어낸다. 콜레스테롤이 단백질과 결합해 몸 안을 돌아다니는데, 지질 구성 물질과 지단백 종류와 결합 정도에 따라 콜레스테롤 종류가 나뉜다.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C)은 혈액 내 콜레스테롤의 약 75%를 차지하며 간으로부터 합성된 콜레스테롤을 몸 전체의 세포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C)은 세포로부터 간으로 콜레스테롤을 운반해 간에서 대사·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중 LDL-
대학교에서 다섯 번째로 맞는 3월은 아직도 낯설다. 처음과 두 번째 3월은 침대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지냈고, 세 번째 3월엔 조급함에 목적 없이 빈 캠퍼스를 밟았다. 네 번째 3월에야 캠퍼스에 불어오는 바람을 자연스레 맞았고, 오늘로써 나는 이 소란스러움을 온전히 등에 진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중앙대의 땅을 밟으며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회고하자면, 조금은 피곤한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모든 사람과 비슷하게도 나의 삶은 의무로 가득 해왔다. 모든 일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라는 수직선 위에 빼곡히 놓여 있었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