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월요일, 이례적으로 현정부는 대통령 기자회견을 열었다. 관례가 없었던지라 작금
의 경제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은 진지해 보였고, 대다수 국민들은
‘준비된 대통령’의 미래 예측력과 결단력, 그리고 지도력을 원했다. 실물경제의 지속적인
침체와 실업, 개인파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은 미래를 보고자 했고 그 미래를 위해 고
통을 인내하고자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대통령은 개혁과 구조조
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으며, 이제 경기부양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경제는 최
저점이며 내년 후반기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악의 경기상황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IMF를 불러온 재벌 중
심의 경제구조와 비만한 정부는 그대로 있는데 벌써 개혁의 핵심인 구조조정이 끝났단 말인
가.

더구나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는 대통령의 시각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모라토
리움, 중남미 경제의 침체 등 아시아의 금융위기로부터 시작한 세계경제 위기는 1/4분기에
5%의 초호황을 맞았던 미국경제를 2/4분기에 2%로 떨어뜨렸다. 이런 실정에서 세계경제 위
기의 중심에 있는 현재의 경제지표가 최저점이란 대통령의 시각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어려운 고통에도 시위나 파업을 자제하면서 고통을 감내하
고 있다. ‘준비된 국민에 준비 안된 대통령’ 그것이 개혁과정 중에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개혁의 원칙

개혁은 사회의 리엔지니어링이다. 지금껏 정치중심으로 되어 있는 사회적 과정을 경제중심
으로 돌려 놓는 것, 관치금융과 특혜금융, 밀실에서 진행되어온 문어발식 기업확장과 실물을
반영하지 못한 자산가치의 확장, 과다한 부채구조를 청산하고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세계적
인 기업과 경쟁력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 거기에 개혁의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리엔지니어링의 주창자 마이클
해머의 주장처럼 개혁은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니 만큼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업에 대한 고통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될 지 모른다. 그것이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불식시키고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원칙이 필수적
이다.

첫째 미래 예측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기획력이다. 미국의 경영과학자인 피터 드러거의
말처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미래가 가져다 주는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만 개혁이 성공
할 수 있다. 개혁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만큼 경영자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그 미래에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경영자의 몫이요, 리더십이다.

둘째 결단력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과감
히 실험하는 것이다. 전세계가 경쟁력 중심으로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할
지 결단력이 없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럼 기회는 오지 않는다. 예측한 미래를 과감
히 실험하는 결단력, 그것이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셋째 분명한 원칙과 투명성 그리고 신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구조를 변화시키
는 만큼 분명 손해보는 쪽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원칙과 투명성이다. 원칙과 투명성만 있
으면 구성원 모두가 승복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리엔지니어링이니 만큼 투명성
의 원칙이 지켜져야만 한다.

적어도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고자 한다면 이 세가지 이념과 원칙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개혁의 문제점

개혁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것이고, 정치가 아닌 경제를 위한 것이고, 국가가 아닌 시
장을 위한 것이라면, 개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
재의 개혁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현재의 개혁은 기획이 없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북풍사건이나 국세청 대선자금 파
문 등을 보면 도대체 개혁의 목표가 처음부터 기획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개혁의 목
표는 세계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비효율적인 우리의 경제체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
다. 그러니 만큼 개혁은 경제회생과 국가경쟁력 회복에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의 개혁은 경
제에 있으며, 경제 외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분명한 원칙이 없다. DJ노믹스로 불리는 현정부의 슬로건처럼, 개혁은 현재 적당한 선
에서 타협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파업에는 정리해고를 양보하고, 만도기계에는 공권력을 동
원했다. 그렇듯 원칙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원칙대
로 진행되어야만 결과에 승복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국민이 참여할 수 있다.

셋째 개혁대상이 불분명하다. 현재의 IMF 상황은 잘못된 기업경영방식과 정치관행이 원인
이 되었다. 기업부실의 주원인은 과다한 계열기업의 확장과 과잉고용에 있으며, 따라서 개혁
의 초점은 계열기업의 과감한 정리와 정리해고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것이 구조조정의 핵심
인 것이다. 대량실업을 피하고자 구조조정을 피할 경우 고통은 길어진다. 전체를 위해 부분
을 희생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개혁의 실천방향

개혁은 21세기 테크놀로지 사회, 무한경쟁의 시장화 된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살지 못하는 기업이나 국가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가 개혁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개혁방향은 다음과 같은 실천
목표를 근간으로 해야 한다.

첫째 경제를 위한 개혁이다. 개혁은 경제논리 속에서 이루어 져야지 정치논리가 우선되어서
는 안된다. 정치가 특정기업을 뒤에서 봐주는 정치논리가 있어서는 안되며 더구나 합작금융
이나 특혜금융, 단기적인 경기부양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그것은 제2, 제3의 환란만 일으
켜 개혁을 더 지연시킬 뿐이다.

둘째 시장경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아사태나 한보사태가 시장원리에 의해서 합병 또는
파산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부실은행, 부실기업들이 시장원리가 아닌 정
치원리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부실을 만연시키고 경제회복을 지연시키
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반도체, 화학, 철강 등에 대한 중복투자·과잉투자 되었던
부분에 대한 과감한 빅딜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부는 시장원리의 원칙에 입각
하여 빅딜과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실시해야 한다.

셋째 세계경제의 흐름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멕시코나 홍콩경제가 어려움
을 겪고 있는 것은 국제적인 핫머니나 헤지펀드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아직은 우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제적인 투기성 자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세계경제의 독해력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개혁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생존력을 강화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업의 기술혁신과 첨단기술 개발, 그리고 기술투자에 정부는 유인책과 지원
책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기업의 생존력은 테크놀로지에 있으며, 테크놀로지만이 기업과 국
가를 살릴 수 있다. 중위권 기술국들의 똑같은 경제몰락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아시아권
내에서의 중국경제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신흥중진국들의 경제적 침체를 야기시키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기술개발과 투자를 독려하고 지원하는 데 전력투구해야만 한다.

<아시아의 비극>의 저자 하세가와 게이타로는 필사적으로 경제체제를 개혁하지 않는한 한
국의 30대 재벌 중 불과 4~5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개혁의 성패는
초기단계가 중요하다. 지금도 늦었다. 더 늦어서는 안된다. 지금 변화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는 21세기에 영원히 후진국으로 머물 수 밖에 없다. 이제 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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