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좌파 이론시장의 침체 혹은 불균형성은 주지의 사실이다. 출판업 자체의 불황, 지배적
이론 담론의 소멸이 배경이 되겠지만, 각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미 시장성이 확보된 말초적
제품들을 고가에 내어놓는 전략을 택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독자)들의 기호는
마찬가지로 편벽되어갔다. 시장을 협소화시켜놓고 그 안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는 자기소모적인
방식인 것이다. 결과는 무엇이었나. 프랑스 철학과 문화연구만이 좌파 이론의 전부인양, 이제
그것 밖에는 쓸만한 얘기꺼리가 전혀 없느냐는 자성마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이론(대개는 서구학자들의 저작을 지칭할)은 이론가들의 연구실에 갇혀있고 간간이
이런 것도 있다고 소개하는게 그들의 유일한 연구작업이 된다. 이런 와중에서 이 구멍가게
이론시장은 더욱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완전하게 설명해내는 새로운 이론을 모세가 십계를 얻듯이 받아들이거
나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요구되는 것은 갇혀진 이론
들을, 부분적인 연구 성과들을 끌어내고 소통시키고 대중화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추상적 논
의들을 상대화시키고 자극시키는 것이다. 지식이 개인의 전유물이 된 것은 계급이나 민족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적’인 현상이다. 이론이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된 것 역시 어찌보면
남한에서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그리고 서구에서는 ‘서구맑스주의’로 지칭되기도 하는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는 당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타파되어야할 구
조이다. 왜 우리는 언어의 장벽을, 자본의 제약을, 저작권을, 그리고 연구자의 권위를 좌파
이론진영 내에서조차 당연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우리는 진보적 정보운동에서 주장한 ‘카
피레프트(copyleft)’라는 조어를 알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정보독점이나 일방적인 정보 주
입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으로, ‘right’(권리·소유)가 아닌 ‘left’(공유)라는 관점 말
이다.

좌파 이론에서야말로 새로운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
닌가. 자본이 강제하는 유무형의 제약, 그리고 이론진영의 관성적 체계가 부과하는 폐쇄적이
고 수동적인 풍토에 대한 반대로서 말이다. 이론가의 연구는 대중들에게 카피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견해는 활동가들에게 카피되어야 한다. 그것은 배타적인 권리(right)가 아니라
공유의 의무(lef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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