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국제연대’운동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
다도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까지 ‘국제연대 운동’이 처한 한계를 살펴보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객관적 조건의 한계 존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국제연대운동의 객관적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이다. 그러나
운동의 조건을 단지 이 정도로 파악하고 멈추어서는 안된다. 각 나라마다 계급 관계의 차이
가 있고, 이에 따라 국제적 운동을 진행시킬 수 있는 ‘운동의 주체적 조건’이 다르며, 아
울러 자본과 국가권력의 힘 또한 나라에 따라 다른 차원에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모든 나라의 ‘진보적 운동’이 동일한 힘으로 동일한 차원에
서 국제적 연대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차이’는 남반구 민중과 북반구 민중 사이에 존
재하는 이해관계의 차이이다. 대부분의 북반구 노조지도부들은 상당수가 일국적, 민족주의적
인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또한 이들은 자국 기업가들의 주장을 따라 국제경쟁력 강화
를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북반구 기업’들의
‘남반구’ 민중들에 대한 착취가 북반구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반구 민중과 북반구 민중들 사이에 이처럼 다른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제적 차원에서의 공동투쟁’의 실현은 대단히 요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영향 받는 수 많은 부문들-여성, 환경 등-은 모두 나
름의 방식대로 국내적 차원에서 혹은 국제적 차원에서 ‘연대’를 실현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국제연대가 제기되는 바로 그 필요성-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노력만이 문제를 궁극적으
로 해결할 수 있다는-을 정확히 충족시켜 줄 정도의 활동을 벌이고 있지는 못하며, 노동자
운동을 포함한 다른 운동과의 연대투쟁 또한 미진한 상태이다.

기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의 현실태로서의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항하면서, 다른 대안을 모색해볼
것인가인데, 그렇다면 국제연대는 ‘세계적 차원에서’, ‘다양한 부문의 운동들이’, ‘신
자유주의라는 단일한 적을 대상으로’ 싸운다는 의미일테고, 이런 의미에서 국제연대의 조
건은 아직까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국제연대운동의 일차적 과제, 특히 한국내 운동단체가 국제연대 운동에
관하여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는 운동간 ‘상호인식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연대’는 우선 상호간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경험의
상호교류를 통해, 인식의 확대와 진보에 대한 확신을 강화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전투성과 대중성은 세계민중운동의 귀감이 된다. 프랑스 실업자 투쟁은 실업자
와 조직된 노동자, 여성, 이주 노동자, 학생 등이 함께 연합하여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게릴라 운동과 시민운동의 연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를 보
여주고, 국가권력을 사멸시키려 하되 장악하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진지한 주제로서 우
리에게 던져준다.

UPS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약직 노동자들, 그것도 대규모 공장하에서가 아
니라 이곳저곳 흩어져서 일할 수밖에 없는 운수노동자들도 폭발적인 힘으로 단결할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주었다. 멕시코 한영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 단위의 노동자 연합체가 아닌
개별노조 단위에서도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투쟁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
었고, 유럽지역에서 운수노동자들이 벌인 도로봉쇄시위는 ‘국제연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PGA, 아시안회의, People Summit 등은 일정한 주제, 일정한 지역, 혹은 특
정한 국제기구에 대한 반대를 위해 네트워크를 구성한 운동의 현실성을 보여주었다.


국적없는 노조연합체 추진

운동의 ‘상호교류’는 물론 보다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국제연대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거나 운동이 격렬한 곳에 지원을 보내는 문제는 아니다. 바람직한 연대는 운동들 사
이에서의 상호보완에 있다. 사실 많은 국제연대 운동은 이미 이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시도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노력들도 해볼만할 것이다.
우선 동일한 초국적 자본에게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동일기업 노조
연합체’를 건설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세계적’ 조직이 될 것이다. 이는 마치 현총련이
산하에 멕시코 한영노동조합을 포함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더불어 국제적 노동조합연맹체의 ‘진보적 강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유럽에서는
유럽운송노조연합의 주도하에 전유럽적으로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인도 등의 노조까지 가세
하여 주요간선도로에 대한 봉쇄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일부 국가에서 아직도 온존하고
있는 운수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없애기 위한 투쟁이며, 그 파괴력은 대단할 것으로 예상
된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각종 노동조합의 국제적 연맹체를 보다 전투적이고 진보적으
로 강화할 때 가능한 국제연대의 모델이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각종 네트워크 사이의 교류 혹은 통합을 모색해야 한
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세계 민중운동은 장기전략과 그리고 당장의 활동에 대해 상시적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공동의 목적과 투쟁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도 있을 것
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국제적 투쟁의 강화가 국내대중운동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이다. 국제적 투쟁은 개별국가나 지역 민중들에게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함을 일깨워주는 계
기이며, 개별적 투쟁은 또 다른 투쟁과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개별투쟁의 적이 되는
‘초국적 자본’, ‘국제협약, 기구’, ‘패권국가’, ‘종속적 신자유주의 국가’등에 대한
저항을 효과적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국제연대 운동의 미래는 세계적 차원에서 민중들의 투쟁과 이에 맞선 자본과 권력의
대응이 어떻게 진행되는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제시한 몇가지 발전
적 제안을 통해, 국제연대운동의 ‘바람직한 양상’을 예상해볼 수는 있다.
국제연대 운동은 시의적절하게, 때로는 거대한 물리력으로 혹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전세계에 걸쳐 있는 단일한 적을 향하여 일시에 ‘국제적 공동투쟁’이 전개될 수도 있고,
자본의 지구화 일정을 늦추거나 지구화 자체에 파열구를 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투쟁이 필
요한 어떤 한 나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간 일상적 교류를 확보하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투쟁, 가장중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국제연대 운동이 강화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싶다. 여러 차례 밝혔듯
이, 이러한 주장은 한국민중운동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잘 알아
야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민주노총을 위시하여 한국민중운동이 자신들 운동
의 조건, 그리고 성패여부가 이미 전세계적 차원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점에 있
다. 이것이 당장 필요한 일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국내에서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대규모 공장의 자본가와 노
동자가 벌였던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격돌이었고, 이런 이유로 반드시 승리해야 할 투쟁이
었다면, 한국노동자 민중운동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과 국가
권력 그리고 초국적 자본과 국제기구에 맞서 노동자 민중운동이 벌이는 가장 중요한 싸움임
을 또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국제연대’를 위해 한국노동자 민중운동이 이뤄야 할 첫 번째 의무이다.
한국에서 국제연대는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점차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노동자민중운동의
승리는 세계민중의 연대를 통해 더욱 분명해질 수 있고, 세계민중들의 투쟁 역시 한국진보
운동으로부터의 연대를 통해 힘을 키워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