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각자 이해 따라 블록 형성 가능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동일 한자문화권에 속해…동질성보다 이질성 두드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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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배타적 블록권을 형성하면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서구의 근대성이 실패하면서, 대안으
로 동양사상이 떠오르자 동아블록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섣부른 낙관보다 여러 변수를 고려한 신중론이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
토론의 흐름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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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있어 동아시아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몇몇 굴곡을 거쳐왔다. 17세기
계몽주의사상가들과 선교사들은 동아시아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볼테
르는 강희제와 건륭제의 중국을 유교이상주의에 입각한 합리적 철인군주의
국가로 흠모했다. 선교사들은 야만의 중국에 기독교적 복음을 선포하러 왔다
가 동아시아의 종교성과 합리적 태도에 매료되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들어 양상은 급변한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동아시아는 미개하고 후진적인 야만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헤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대로 동아시아는 시민사회를 이룩하지 못하고 일인(一人)의
자유에 복속된 정체(停滯)의 왕국이었다.서구는 자신이 이룩한 자연지배의
엄청난 물리력에 도취되었다. 무기와 운송수단, 그리고 생산능력의 발전은
식민과 제국의 시대를 열었고, 그 파도는 곧 동아시아로 덮쳐왔다. 아편전쟁
은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운명을 결정했다. 전쟁은 싱겁게 끝났고,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과 문화적 자존이 서구의 무력 앞에 허망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 사건이 동아시아인에게 준 충격은 컸다.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지
향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자각을 키웠고, 중국은 자신의 전 문화를 근본적으
로 재검토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3국은 극단적인 보수주의
에서 온건한 유교문명의 혁신, 그리고 극단적인 서구주의와 사회주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고 활발한 실험을 논의했다.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
했다. 결국 20세기는 서구의 동아시아침탈과 지배로 요약될 수 있다. 2차 대
전 이후 지속된 냉전의 체계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세기가 끝나가
려 하는 지금 그 지도가 바뀌고 있다. 늙은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다.
동아시아가 오랜 식민의 세기를 마감하고 세계사의 주권을 되찾았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동안 축적해온 동아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힘이 세계를 위협
하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그 거대한 경제력으로 유엔의 상임이사국을 노리고 자위대를 군
사조직화하고 있다. 중국 또한 사회주의의 오랜 정체를 딛고 그 막강한 인력
과 자원으로 자본주의와 산업부흥을 실험하고 있다. 한국 또한 식민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기간에 고도성장의 신화를 이룩했다. 서구는 동아시아의 저력과
놀라운 적응력의 정체를 알기 위해 고심해왔다.

동아시아의 의미는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구는 지금 자신의 문명자
체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인간의 힘을 무한정 확
장시켜 주었지만 그로 인한 파행과 피해 또한 적지 않다. 핵무기에 의한 인류
의 소멸, 공해의 심각성과 환경의 위기 등등, 근대문명을 구성하고 있던 제 요
소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증대하면서 자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문명의
원리를 그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근대과학은 세계를 독립적 원자의 집합으로 본다. 그리하여 인간은 개인 혹은
주체로, 사회는 개인간의 임의적 계약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근대의
문제는 결국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은 개인, 유기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
중심주의의 결과이다.

20세기 초 원자물리학의 발달은 아원자의 세계가 전혀 다른 원리, 즉 주체가
없는 관계의 복합이나 과정의 연속임을 확인했다. 세계는 유기적 복합의 전체
성이고, 모든 인자는 시스템적으로 얽혀 있다. 개별적 자아나 주체는 전체에
의한 협력과 헌신 없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물리학이 아닌 생물학적
진실, 정복주의가 아닌 생태주의의 원리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은 이같은 `새로운 과학'의 원리를 선취(先取)하고 있다. 동
아시아문명을 구성하는 제반 코드, 이를테면 확산이 아닌 응축, 권리가 아닌
의무, 자유가 아닌 협력, 개성이 아닌 헌신은 그 원리의 다양한 분지들이다.
새로운 세기의 문명은 이들 코드를 채택하거나 혹은 보완해야만 파국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문명이 미래의 세기를 지배하고 주도할 것
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근대를 거치지 않으면 탈근대 혹은 근대 이후는 없다.
동아시아적 전통은 근대서구문명이 자신의 틀을 수정 보완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들추는 참고사항에 그칠 것이다.

솔직히 과학의 영역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생태와 환경 역시 과학적 기술의 연장선에서 해결될 것이다. 도가(道家)
의 안심입명이나 자연회귀로는 과학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과학
은 과학으로 풀어갈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동아시아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보
는 시각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동아시아는 동일한 한자 문화권에 속하지만 동
질성보다는 이질성이 두드러진다. 근대 이후의 경험이 이 간격을 더욱 크게 벌
려 놓았다.

일본은 지금 동아시아의 일원이 아니라 세계를 주도하는 초강국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킬 때처럼 동아시아의 맹주로서 권위적 위상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중국은 오랜 사회주의적 전통이 몰고온 침체와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제 자본주의와 산업부흥을 기획하고 있다. 그들 또한 동아시아의 최대
의 물적 인적 자원을 무기로 아시아의 맹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초인적인
노력으로 후발개도국을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으되 인프라의 취약과 자원과 기술
의 빈곤으로 하여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3국이 처한 국면의 차이는 `동아시아적 전통'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중국은 자신의 위대한 과거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다. 중국의 학
자들은 당면의 근대화의 과업을 위해 전통이 걸림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일본 또한 근대적 성취에 도취한 나머지 동아시아적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서구화와 산업화가 보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루
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거시적 단위의 동아시아는 또 다른
군국주의를 연상시킬 뿐이다. 한국만이 근대화에 대한 일정한 성공을 바탕으로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조심스럽게 돌아보고 있다.

이런 이질적 동아시아가 단일한 블록을 형성하게 될까는 의문이다. 그렇지만
연대의 필요성은 증대하고 있다. 소련의 후퇴로 하여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세
계의 경찰을 자임할 이유가 없다. 양극화가 무너진 세계는 적나라한 자국이기
주의의 전국시대로 돌입할 것이다.

벌써 무한경쟁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은 일상어가 되었다. 이념이 쇠퇴하고 각
민족과 국가의 힘이 행세하는 시대가 오자 세계는 권역별로 배타적으로 블록화
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북미연합이 선두에 섰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도 새
로운 블록을 형성해야 경쟁력을 갖는다.

그렇지만 3국의 서로 다른 역사와 이념, 경제적 정치적 환경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3국의 연합은 동일한 한자문화을 공유한다는 혈연적 동질성보다 전략적
모색과 선택의 결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시대의 도래를 흥분하
기 이전에 우리의 정치경제적 역량을 확대하고 문화적 경쟁력을 구축하는 데 주
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나아가 세계 속에서의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

한형조<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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