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앞세워 벌어지고 있는 ‘자본의 세계화’는 전세계 민중들
을 점차 공통의 조건에 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전세계적으로 빈곤이 심화
되고, 초국적 금융자본을 위시한 자본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행위가 거의 전세계적으로 확산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러한 세계화는 전세계 민중들이 예외 없이, 실업
과 복지 축소, 독점의 강화 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자본의 세계화는 점차로 ‘투쟁의 세계화’를 위한 객관적 토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과거에 노동조합의 국제적 조직이나 환경운동 등에서의 국제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근
래 들어 ‘국제연대’의 경향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것은 이미 말
했던 자본의 세계화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동시에, 인터넷 등의 컴퓨터 네트워크 망이 급속
히 발전하면서, 진보진영 내에서 이를 적절히 활용하려는 노력이 증가한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가 거의 모든 나라에 야기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실업’이다. 이 ‘실
업’문제를 가지고 국경을 넘은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유럽대행진(Euro March)’은 엄
청난 고실업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 조직된 민중들의 행동이었다.
유럽통합이라는 자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국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수렴조건을 지
켜야 했다. 99년 1월부터 시행되는 유럽통화동맹(EMU)은 유럽 각국이 이 수렴조건을 준수
해야만이 창설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초긴축 정책을 단행했다. 시중에 돈이 풀
리지 않으면서, 기업활동은 위축됐고, 이런 상황은 엄청난 구조적 실업을 야기시켰다. 그러
므로 특히, 유럽의 경우에 있어, 실업은 모든 나라 민중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고통이었
다. 유럽대행진은 유럽의 모든 정부를 대항해서 유럽 민중들이 하나가 되어 실업문제를 해
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럽대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초국적 자본의 생산기지가 여러 나라로 분산되면서, 같은 회사 혹은 같은 업종에 속하는 다
른 나라 노동자들끼리의 연대도 점차 가시화 되고 있다.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르노
자동차는 구조조정을 위해 벨기에에 있는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벨기에 르노 노동자
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이에 연대하여, 유럽 각국의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은 동조 파업을 벌
였다. 공장을 폐쇄하고 단지 벨기에에서 ‘철수’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르노의 자본가들은 생각지 못했던 전유럽적 저항에 부딪혔던 것이다.
국제육상노동자연맹(ITF)과 유럽연합운송노조연맹(FST) 등이 주도하여, 현재 벌어지고 있
는 운송노동자들의 국제적 실력행사 또한 이러한 경우의 적절한 예이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벌어지고 있는 도로봉쇄시위는 현재 유럽전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북남미, 아프
리카, 인도 등 세계 각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 운송노동자들은 주요 간선도로를 막고 요구사
항을 주장함으로써 자본가들에게 막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통신망의 발달로, 개별 기업의 노조가 벌인 파업에 대해 국제적인 연대활동이 전개되었던
경우도 있다. 영국 리버풀에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을 벌였던 항만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전세계’로부터 지지 지원을 받은바 있고, 멕시코 마낄라도라 지역 소재 현대정공 계열사
인 한영기업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의 국제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한영노동
조합의 경우에는 값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 미국자본과 멕시코 정부가 결탁
하여 건설한 ‘마낄라도라’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민주노조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투쟁 역시 국제적 연대로 인해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에 맞선 싸움은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각종 국제기구·협정들에 대한 싸움으
로 이어진다. OECD내에서 올 10월에 타결될 예정인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대한 반대투
쟁은 대표적 예이다. 만약 MAI가 타결되어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이 협정의 영향하에 놓이
게 된다면, 초국적 자본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천국을 실현하게 된다. 모든 국가는 모든 자본
에 대해 자국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그 어떤 국가도 초국적 자본의 활동을 방해할 수 없으
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기존의 법까지도 개정해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만약 국가가 기업활동에 방해가 되는 일을 했을 경우 기업은 국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러나 MAI 조항에는 국가가 기업을 제소할 권한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MAI에 반대
하는 투쟁은 전세계 6백 여개의 비정부기구(NGO)들이 지난 4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OECD
각료회담에 맞춰 진행시킨 대규모 집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APEC에 대해 반대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자본의 횡포를 차단시키기 위한 네트워크 역시 여
러개가 존재한다. NO-TO-APEC은 그 대표적인 네트워크이며, People Summit 또한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연이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민중의 요구를 제시해 왔다.
국제기구나 국제적 협정에 대한 싸움은 이렇게 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된다.
이미 거론했던 네트워크 이외에도 많은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구적 민중행동(PGA:Peoples’ Global Action)이 있다. 94년 1월 1일 멕시코에서는 원주민
들의 자치와 해방을 기치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무장게릴라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함을 인식
했으며, 이를 위하여 96년 치아파스주에서 세계의 진보적 지식인과 단체들의 대표를 모아놓
고 제1차 대륙간 회의를 개최했었다.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공
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이 흐름은 작년 스페인에서 벌어진 제2차 대륙간 회의로 이어졌
고, 올해 2월에는 그 문제의식을 보다 발전시켜 세계 각국 단체와 개인이 참석한 가운데 지
구적 민중행동(PGA)를 건설한 것이다. 지구적 민중행동은 WTO에 반대하며, WTO가 표방
하는 자유무역에 대해서도 역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의 계획하에
이미 올해에만 여러차례의 전지구적 동시다발 시위가 진행되었었다.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국제연대’의 적극적 노력은 이제 한국에서도 점차 모습을 갖
추어 가고 있다. 그 동안 한국민중운동은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다. 이
런 이유로 한국민중운동이 전개했던 ‘국제적 활동’이란, 노동절이나 노동자 대회 등의 대
규모 집회때 외국인을 초청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올해 들어 국제연대를 위한
노력은 점점 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올 상반기 있었던 국제연대행동네
트워크의 활동이다. 국제연대행동네트워크는 몇몇의 진보적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네트워크
이다. 이들은 4월에 MAI에 반대하는 국제적 활동과 발맞추어 한국에서 그 반대운동을 전개
했었고, PGA와의 긴밀한 협조하에 다양한 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제연
대’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난 11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민중
회의’의 개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국내 25개 단체가 함께 준비한 서울국제
민중회의에는 15개국 27개 단체에서 35명의 외국인이 참가했다.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시종
신자유주의와 IMF를 맹렬히 성토했으며, 초국적 자본에 맞서 저항하는 민중들의 힘은 전세
계적인 차원에서 모아질 때 보다 강력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민주노총은 이갑용 위원장이 발표한 서울국제민중회의 환영사에서, ‘이번 회의를 계기로
민주노총은 전세계 민중들의 선두에 서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 한국민중운동은 이제 막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세계
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대중적인 민주노총의 선언은 국제진보운동을 한발 앞으로 전진시킬
것이다. 한국민중운동은 세계민중의 대의를 위해 활동할 것이며, 세계운동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면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국제연대’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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