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은 실망스러운, 내가 보기에는 실력이었지만, 경기
를 펼쳤다. 사실, 결과는 예견된 일이었는데도 국민들의 비난은 쏟아졌고, 이를 무마하기 위
해 축구협회는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 경질했다.

그 국민감정의 밑바닥에는 ‘애국심’이 커다랗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월드컵 이후 골프
여왕 박세리, 박찬호, 선동열 등의 소식과 그리고 최근의 국내 프로축구의 이상한(?) 열풍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포츠 선수로 사는 것과 우리네 보통사람이 사는 것은 결국 같
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 나 혼자만의 이야기

스포츠를 하는 것과 보는 것, 둘 다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포츠 중계방송도 자주 챙
겨보는 편이다. 그 순간 나의 관심은 브라운관에 클로즈업되는 선수들의 표정이다. 항상 굳
은 결의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난인지 경기인지 분간이 안되게 그저 즐기
면서 하는 사람도 있다.

작년부터 박찬호의 모습에서 느끼던 답답함, 박세리의 승리와 지옥훈련 과정. 이들은 적어도
즐기는 쪽은 아니다. 승리에 대한 강박관념과 아버지의 강요가 주된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들의 플레이가 일순간의 감동은 줄지언정, 지속적인 기쁨은 주지 못한다. 감동은 멀고 높지
만, 기쁨은 가깝고 사소하다. 운동선수가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박세리와
비교되는 아마선수 중에 박지은이라고 있다. 그녀는 연습을 하고 싶을 때만 한다.

그럼에도 성적은 아주 좋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전에 은퇴선언 했을 때, 그 이유로
‘더 이상 뛸 이유가 없어서’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재미와 최선은 맞서 있지 않다. 재미있으면서도 열심히 하
고, 또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축구로 돌아가면, 화려한 머리를 휘날리며
국가대표 수문장으로 활약하는 김병지는 최근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흥미있는 발언을
했다.
“웃기는 축구, 골 때리는 축구, 땀흘려 뛰는 축구로 즐기는 공간을 만들겠다.” 다시
말해 재미있는 축구를 하겠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그는 네덜란드에게 0-5로 패하고도 그냥
웃고 말았다고 한다. 애국심이 없어서일까?

여기서 우리는 한국 스포츠의 단명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스포츠 역시 목숨을 ‘이어가는’
과정일 텐데도 그것을 ‘목숨 걸고’ 하니, 그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프로페셔날이라는 이름으로 강조되는 철저한 승부정신. 이를 통해 죽어라고 노력하는 사람
이 있고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또다시 그 길로 덤벼드는 사람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
리고 그렇게 해야만 이 거대한 자본주의의 바퀴는 굴러갈 것이고.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그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길은 자신이 먼저 즐기는 스포츠가 되
어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일 뿐이다. 스포츠가 더이상 스포츠가 아닐 때, 예
를 들어 조국을 구원하는 메시아로 인식되는 순간, 자본은 그것을 포박해 버리기 때문이다.
목숨걸고 벌어들인 상금과 한순간의 승리에서 오는 기쁨은 중요하지 않다.

선수 자신이 플레이하는 그 순간 자체를 즐기며 전유할 줄 아는 선수를 보노라면 나도 같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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