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박청호 (소설가)


올해 의혈창작문학상에 응모한 소설은 모두 36편이었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 전에 먼저 드는 느낌은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목소리를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며 구성의 완성도나 문장의 세련미 등에서도 일정한 성취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문학을 공부하는 많은 대학생들의 수준을 가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재능 있는 학생들이 곧 있을 신춘문예를 비롯한 기성 문단으로 진출하려고 대학문학상에는 응모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응모작 가운데 임세화의 <네버랜드>가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대개의 문학상 당선작들이 소설이 갖추어야 할 장점을 두루 갖춘 별 흠이 없는 무난한 작품인데 반해 <네버랜드>는 한쪽으로 치우친 작품이라는 점에서 대상으로 결정할 것인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네버랜드>는 매우 모던한 작품이다. 재미있는 줄거리가 있다거나 힘차고 깊이 있는 서사나 읽고나서 진한 감동을 준다든가 하는 정통적인 독법을 거의 무시한다. 그저 시종일관 작가의 예리하고 냉정한, 섬세하고 세련된 그리고 내밀하면서 동시에 외부 세계에 대한 직관적인 관찰력만이 지배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오직 작가의 ‘시선’ 하나로 작품 전체를 이룬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네버랜드>는 당선작으로 밀기엔 전통에서 벗어나 있어 잘 쓴 가작쯤으로 폄하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응모작 가운데 이보다 나은 작품을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대상을 받아 마땅하다.

소설을 분류하는 여러 기준이 있으나 여기서 굳이 두 부류로 나눈다면 예술적 소설과 인문 사회적 소설이 있다. 전자의 예는 오정희, 이제하, 김채원 등의 소설에서, 후자는 이문열, 황석영, 윤흥길 등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후자가 개인과 공동체, 사회와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며 그 속에서 살며 고통하며 투쟁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전자는 개인 그 자체 혹은 그 내면적 삶을 성찰하는 특징을 지닌다. 아울러 후자는 소설적 내용을 통한 감동을 전달하며 전자는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예술적 체험(다분히 형식적 측면이 강한)을 겪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네버랜드>는 다분히 예술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어머니를 잃고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약간 장애가 있는 한 남자의 생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독자는 그 시선을 따라 읽어가면서 형식적, 미적, 예술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응모작 가운데 눈에 띤 다른 작품들은 김보현의 <감정박물관>, 박혜원의 <투명>, 이채민의 <개꿈>, 전아리의 <거울 속으로>, 정원희의 < 뱀 혀끝에 팔랑거리는 노랑나비>, 박현자의 <집착>, 허민희의 <미미의 여행>, 박지혜의 <이사> 등이었다. <감정박물관>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는 인정되나 독백체를 남용, 주제를 너무 쉽게 드러내고 있어 아쉬웠다. 소설은 작가의 세계관을 담은 깊이 있는 서술문 형태로 쓰는 것이 기본이다. <투명>은 신(神)에 대해 질문하고 있으며 우리 문학에서 자주 볼 수 없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채민의 <개꿈>은 뒤틀린 가족사를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였고, <거울 속으로>와 <뱀 혀끝에 팔랑거리는 노랑나비>, <미미의 여행>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파헤치려는 시도가 좋았으며 <집착>은 여성의 심리를 욕망의 차원에서 탐구하고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전통적인 리얼리즘적 서사를 안정적으로 구사한 박지혜의 <이사>를 가작으로 뽑고, 야심만만하게 자기의 스타일을 구사하려고 노력한 <감정박물관>과 <투명>에게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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