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학술지계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120호(2005년 가을호)를 종간호로 폐간되는 ‘한국학보(韓國學報)’때문이다. ‘한국학보’는 국문학, 국사학, 민속학,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의 한국학에 대해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는 학술계간지로, 1975년에 창간하여 30년 역사를 이어왔다. 재정난에 시달리며 어렵게 명맥을 이어오다 결국 한달이나 늦은 10월에서야 가을호를 발간하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국학보’는 학회가 아닌 출판사에서 발간한다. 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의 경우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 지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논문 투고자에게 평가 점수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지만 한국학보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편찬되는 학술지이기 때문에, 논문을 기재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르고 재정난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심각해

  또한, 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는 특정 한분야에 대해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국학보는 한국학문에 대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한국학보의 출판을 담당하는 김유진씨(일지사 편집장)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를 접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는 ‘한국학보’는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학술논문이라는 글이 일반인에게는 읽기가 쉽지 않아 대중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폐간은 비단 ‘한국학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술지뿐만 아니라 비평지도 폐간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2003년 종간된 ‘사회비평’, 2005년 1월 종간된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최근 폐간된 ‘당대비평’까지 지난 2, 3년 동안 비평지의 폐간이 이어졌다. 비평지 또한 논문을 싣는 학술지와 성격이 달라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과 동시에 문예 진흥원의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재정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이렇게 학술지, 비평지 등 잡지의 수난이 이어지는 우선적인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이다. 김유진 편집장은 “전국의 수많은 대학 도서관에 한국학보를 한 권씩만 비치해도 재정 문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대학의 도서관에 이러한 계간지를 종류별로 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잡지의 수가 매년 늘어나는 것과 함께 잡지들이 정기적으로 나오다 보니 도서관에 보관해두는 도서량의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실정이다.

대학생도 관심없는 학술·비평지

  일반 독자수의 절대 감소 현상도 문제이다.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격변기였던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각 학술지나 비평지를 읽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더러 수요량도 많았다. 1970년대의 학술지인 ‘사상계’는 그 당시 10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각광받는 현대사회에서 학술지나 비평지, 문예지에 대해 ‘이론적이고 재미없는 내용’으로 인식되어 예전에 비해 수요량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김유미씨(경북대 사회과학대 문헌정보학과 1)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학술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편이다. 학술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어떠한 학술지가 좋은 학술지이고 유명한 학술지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 학술 논문은 어려워서, 비평은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과거에 잡지는 정부에 대항하고 사회를 꿰뚫어보는 지성인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정부의 압력에 의해 폐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폐간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현재 많은 잡지들이 그 당시 부당하게 폐간된 잡지의 뜻을 이어받아 복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폐간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꼽는 이유가 ‘재정난’이다. 서점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각종 학술·비평지는 일반인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술·비평지이지만, 오히려 이 책들은 일반인에게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폐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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