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가 내건 `세계화'라는 구호에 힘입어서인지 한국은 이제 정말 세
계화가 된 것 같다.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세계 최강국의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미인의 전형은 백인여성
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세계 최고의 미인대회에서 일등이 되기도 하고, 보
통사람은 셈하기도 어려운 굉장한 돈을 받는 미국과 일본의 메이저리그 야구
에서 최고의 투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한
국인임을 자랑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는 `손에 손잡고'란 소책자를 보면 기막힌 이야기들이
많다. 어떤 중국 동포에게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일을 시키고도
임금을 주지않고 또 밀린 임금을 요구할 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뱅글라데시인에게는 사업을 같이하자며 한국에서 어렵
게 번돈을 횡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재해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치료는 커녕 밀린 임금도 지불하지 않고 쫓아냈다는 이야기는 부지
기수이다.

몽고에서 온 어떤 부부에게는 그 부부를 갈라놓으며 부인을 농락하다가 결국
살인사건을 일으키게 했다는 말도 있다. 필리핀에서 비행기에서 내리던 어떤
한국인 사업가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았다는 이야기나 인도네시아에서 `한국놈 개새끼'라는 책
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은 한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가 박대한
결과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오는 네팔,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필리
핀, 중국, 몽고 등의 지역에서 한국인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가 없다.
한국인은 부끄러운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소위 한국인의 `세계화'란 것이 야비하고 치사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계 강대국과 관계를 맺을 때는 한국인임을 자랑할 만 하지만
우리보다 못사는 지역의 사람들과 상대할 때는 한국인이 치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세계화된 한국인이 더불어 살아야 할 세계시민은 부자나라의 백인들
이지 가난한 나라의 검둥이들이나 미개인들이 아니라고 드러내 밝히는 듯하기
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야 할 사람들이 초
강대국의 백인들인지 아니면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경험하는 나라의 사람들인
지 생각해보자. 지금 자랑스런 한국인들을 치켜세우고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
습에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들이 정말로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제대로 처신하
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한국내에서 한국인을 위하여 고통받으며 일하고 있
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사람들을 함께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
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의 미래는 그래도 열려 있을 것이다. 한국내의 외국인
문제 해결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고부응<문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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