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과학기술 민주화 현장 (5) 프랑스
  • 중대신문
  • 승인 1998.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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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사상,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콩코드와 테제베가 상징하듯 유럽 최첨단 과학기술국이
다.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보급률이 낮다고 해서 프랑스를 과학기술이 뒤처지는 나라로 생각
한다면 착각이다. 인터넷 이전에 정보단말기 미니텔을 자체 개발해 보급했고, 세계 최고의
철도기술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또 아리안 로켓의 성공이 보여주듯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 버금가는 인공위성 발사기술을 지닌 나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랑스는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에 비한다면, 과학기술정책에서의 참여민주주의는 이
에 훨씬 못미치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우주·원자력 등 고도로 중앙집중적이고
폐쇄적인 거대기술을 발전시키다보니 시민참여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인구가 6천만명에 이
르는 것도 인구 5백만명의 덴마크처럼 과학기술정책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는데 걸림돌
로 작용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런 과학민주주의의 공백을 메울 나름의 잘 짜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엄
정한 과학평가제와 과학자 사회 안의 민주화, 과학자와 시민간 대화의 장 등이 과학기술민
주주의의 ‘프랑스적 대안’이다.

첨단 항공우주산업이나 군수산업을 예외로 한다면 프랑스 과학기술 연구의 대부분은 국립과
학연구센터(CNRS)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지난 39년 창설된 국립과학연구센터는 대학 연구
소와 각종 연구실을 망라하는 방대한 전국적 과학연구조직으로, 이에 소속된 연구소가 3백
50여 곳에 이른다. 그외에도 1천여 곳의 연구소와 협력해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국립과
학연구센터는 물리학과 수학·핵물리학·엔지니어링·화학공학·우주공학·생명공학·인간
과 사회과학 등 7개 분야로 나뉘어 운영된다.

그러나 이런 조직체계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국립과학연구센터 안에 독립 기구로 마련된
국립과학연구위원회(이하 위원회)라는 과학연구평가기구이다. 위원회의 선출규정은 특히 주
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 위원회는 모두 40개 분과로 짜여있다. 한 분과는 각 21명의 위원으
로 구성되는데 이중 7명은 국립과학연구센터 총장의 추천으로 정부가 임명하지만 나머지 14
명은 전국 과학자들이 직선으로 뽑는다. 선거에 참여하는 과학자만도 8만여 명에 이른다.

이 위원회가 ‘과학자들의 의회’로 불리는 것도 이렇듯 광범한 과학자들이 직선을 통해 참
여하기 때문이다. 지방과 파리간의 연구지원의 형평성을 고려해 위원회 의석도 지방 57%,
파리 43%로 나눠 놓았다. 이렇게 구성된 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과학연구의
질을 평가하고 각 연구가 프랑스 사회에 얼마나 유용한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맡는
다. “과학자들의 연구의 자유를 제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구와 적용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다. 프랑스 정부와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에 각각 과학윤리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윤리위원회는 예컨대 인간복제실험금지등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
고 있다.”

위원회 마리 가브리엘 슈바이고페르 사무총장의 과학기술민주화와 관련해 “연구와 정책적
용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과학연구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적이면서도 철저한
연구평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에 복무하는 과학’이라는 국립과학연구센터의
모토는 이런 연구 및 평가체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원회는 또 4년마다 과학정세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 이 보고서는 이름 그대로 현대과학의 동향과 과제등에 대한 심
층적 분석을 담고 있다.

한편 의회 산하 과학정책평가기구인 OPECST는 의회의 과학기술관련 정책의 선택과 결정
을 돕는다. 물론 과학연구 및 평가를 전담하는 국립과학연구센터와는 별개의 기관이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각종 단위조직의 민주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프랑스인들의 사고는
과학자 집단 안에서도 예외없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훈 <한겨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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