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분야 집중된 마녀사냥식 단죄...반대여론 빗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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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동안, 문화계는 무차별로 불어닥친 공안바람으로 얼
어붙고 있다. 이번 공안바람은 지난 봄 음란시비를 불러일으킨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씨의 법정구속으로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왕가위 감독의 `부에노스 아이레스-해피 투게더'
,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이 모두는 국가기관의 불합리한 간섭속에 창
조성과 실험성을 인정받기는커녕 피해를 입은 문화상품들이다.청소년 폭력문
제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일본만화를 본떴다는 청소년
폭력써클 일진회 사건을 계기로 일본만화의 문제성이 제기된 바 있다. 다음
으로 자연스럽게 칼날의 끝은 국내만화를 겨냥했다. 지난 7월23일 만화가 이
현세씨의 소환조사는 문화계에 거세게 일고있는 공안바람의 심각성을 잘 드
러내고 있다.

검찰이 음란.폭력물로 규정한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는 고대신화를 소재
로한 1백권짜리 대작으로,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상고사를 복원해
보려는 방대한 기획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던 터였다.이중 검찰의 지적에
따르면 2~4권에 묘사된 집단성교나 수간(獸姦)은 하드코어 포르노이며, 청소
년에게 유해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씨측은 "처음 인류가 생겨나던 시기,
곧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고 인간이 원숭이나 다름없는 시기에 대한 묘사"
라고 설명한다. 더군다나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몇 가지 체위만 나타났
을 뿐 성기삽입을 묘사한 부분은 보이지 않아 하드코어 포르노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청소년용과 성인용을 따로 출간한 상태이므로 청소년과 성인 대상의 매체를
정확히 분류함으로써 성인만화에는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함과 동시에 청소년의
성인만화 접근은 철저히 근절하겠다는 청소년보호법에 완벽히 부합한다는 점도
검찰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때를 같이해 청소년보호법의 실행을 위한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손봉호)에
서도 1천7백여종의 만화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분류한 상태이며, 여기에는 이
현세, 허영만, 이두호씨 등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만화작가들이 대거 포함돼있
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8월1일에는 국내 스포츠 신문 연재만화와 관련,
편집국장 3명이 기소되었으며 만화가들의 시한부 절필선언과 서명운동이 이어졌
다. 물론 일본만화를 베끼다시피하고 청소년에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여과없이 제공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하지만 옥석은 가려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공안한파로 시달리는 곳은 만화계뿐만이 아니다. 실험성이 돋보이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올랐으며, 왕가위 감독의 `부에
노스 아이레스-해피투게더'가 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김상식, 이하 공륜)로
부터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다.공륜은 `나쁜영화'에 대해 연소자 관람불가 등
급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으나 감독 및 대중들의 강한 여론에 부딪혀
재심의를 거친후 몇몇 부분을 삭제한 채 1백35분이던 감독판이 1백22분짜리
로 상영되었다.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공륜의 심의는 위헌"이라는 판정에도
불구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수입불허는 공륜의 건재함이 과시된 계기가
되었다. 공륜은 동성애에 관한 만큼은 국민정서가 아직까지 거부감을 갖고있
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7월21일 한국을 방문한 왕가위 감독은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단순히 동성애영화로 규정되어 수입불가 판정을 받은
것에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으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영화는 "인간과 인간
의 관계를 다룬 영화"라고 덧붙였다.

백인의 동성애를 소재로한 영화 `버드케이지', `아이다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프리스트', `바운드' 등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동양인의 동성애를 다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차단을 두고 퀴어영화제 준비
나 동성애인권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요즘 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무색하게 만든 이번 공안한파는 세계의 문화전쟁시대에
도태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았다. 특히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
의 양대산맥인 영화와 만화산업에 집중된 검열은 이들이 기반으로 하고있는
창조성과 실험성을 고사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더군다나 검열의 칼을 휘두를 때마다 등장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거론도
좀더 신중함이 요구된다. 국가기관의 단죄시에는 유감없이 거론되는 `국민정
서에 반하기 때문에'라는 상투적인 어휘가 어느정도로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지 진중한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최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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