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학교에 계시는 어떤 분이 자기 부인을 지칭하면서 `내 부인이 말야
…'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뒤로 그 분을 몇 차례 만났는데, 특별한
이유없이 그 분이 몹시 경박해 보이고 대충 사는 사람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부인' 운운한 언급 때문에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
던 것 같다. `내 부인'이라고 해도 별 문제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왜 나에
게 그런 선입견이 생겼을까. 또 어떤 분은 회의를 할 때 같은 학교 사람들인데
도 꼭 `저희 학교'라고 말한다고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해 몹시 한심해 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한 당사자야 "`우리 학교'나 `저희 학교'나 무슨 상관이람"하겠지
만 말 속에 예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동생에게 `삼촌'이라고 부르고, 남편에게 `아빠'라고 하며, 음식점
점원보고 `언니'라고 부르는 등 뒤죽박죽이 되어도 뜻만 통하면 문제가 없을까?

이 의문에 대해서 두가지의 답변이 가능하다. 한 가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럴듯한 언어학적 해석을 붙이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몰지각한 인간들이
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삼촌,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이'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라고 하면 그럴듯한 해석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옳
은가보다는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어른 앞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저'나
`제'보다는 `나'나 `내'를 많이 쓰고 있다. 이것을 평등 사회로 가는 한 단면이
라고 보아야 할 것이가? 아니면 점점 황폐화해가는 인간 관계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혹시 `저'나 `제'와 같은 겸양어를 봉건 사회의 잔재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까?

언어는 집단 생활을 하는 인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에는 한 개인의 지성, 정서, 한 문화권의 관습과 역사, 한 사회의
조직적인 지식의 총체가 반영된다. 한 언어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는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
에 어느 한 부분이 변하면 다른 부분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존대 어휘가 사
라지고 나면 존칭을 나타내는 형태소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우리의 중요
한 무형 자산이 사라지게 된다.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다시 상대방에게 되돌아 가기 마련인데, 이런 관계가 그렇지 않는 것
보다 바람직하다면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 조상들이 유구한 세월 동안 지켜 온 이 좋은 언어 관습이 다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어른과 말 할 때마다 멋적게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등
의 갖은 수사적인 표현을 구구절절이 해야 하고, 그것도 귀찮아지면 `왜 내가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지'라고 의문을 갖을 지도 모르며, 더 나가면 그런 생각
조차 잊고 살게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들
사이에 왜 적당한 긴장이 필요한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찬규<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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