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디어 아트는 숙명 같은 모험심과 애착으로 착상하여 난산하였지만 어려서부터 그 재능을 발휘한다. 90년대 이전까지 작가들의 수는 백여 명을 넘지 못한다. 그것도 광의해석을 통해 유사 작업자까지 포함시켜서 대략 짚어본 숫자이다.

백남준은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현대미술사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해외에 있을 때 국내 일간지에 필자를 제2의 백남준이라 기사화 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의 작업이 남들과 유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들 자존심이다. 지금은 인스톨레이션 작업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내 작업에 대해 물어 오면 백남준 작업과 비슷한 작업을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대범해진 걸까.

백남준 이후로 국외에 알려진 미디어 작가가 있다. 바로 육근병.

동양사상 돋보는 육근병

아직도 세계적인 한국 작가는 열손가락에 꼽기 힘든 게 사실이다.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을 얻은 그는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면서 해외에 알려진 두 번째 작가가 되는 셈이다. 카셀 도큐멘타는 4년 내지 5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작가로 선정되면 올림픽 출전만큼의 영예를 갖는다. 

육근병의 작품에는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여 동양사상을 돋보이게 하는 마술적 힘이 있다. 그는 복잡하지 않은 만큼 추진력과 결정력이 강하며 뛰어나다. 순수하고 단순한 그의 작업이 강력한 어필을 가져다주는 이유이다.

서구문명의 문화적 상징-신전 양식 건축물의(8 미터)기둥과 한국(또는 동양)의 문화유적의 보고-왕릉 형태의 둔덕에 설치한 눈(eye) 영상이 비디오로 재현 되고 있는 무척 미니멀한 작품이다.

조그마한 사진으로 잘 느낄 수 없지만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이 서로 교감하는 장소에 있다는 상상을 하여 본다면 대부분의 서양 관람객들에게는 동양의 신비에 막연한 외경을 가져다준다.

‘바로 그 재미에 그 멋에 나의 그 구멍은 하루 일과 중 매우 중요한 시간과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라고 밝히는 그의 어린시절 구멍을 통해 바라본 세계를 관객들도 나름대로 그 멋과 그 재미를 느끼길 원하고 있다. 호기심은 사랑의 발동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미술의 소재가 백남준 이후로 동양사상에 물들어 가는 경향을 느낄 수 있다. 빌 비올라(Bill Viola)의 경우도 성경이라는 기반 프레텍스트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에는 동양 사상을 함유하는 시공간의 주관적 해석이 짙게 작용한다.

기존 비디오 작업은 모니터나 프로젝션을 통하여 단순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공전궤도(rev vol lu tion) ⓒunzi 1995"경우에는 모터에 의해 돌아가는 모니터 영상(동영상도 돌아가고 있어 내 주위를 스캔하는 듯한 영상을 보여준다)을 통해 언어의 기계적 왜곡이 빚어내는 주기에 의해 생성되는 언어의 조합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였다.

“N.E.O.S. 북동서남 ⓒunzi 1997"이란 작품은 입체 프로젝션을 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이 동영상이 실제로 큐빅의 공간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실재감을 느낀다. 4대의 캠코더로 반투명 아크릴 박스에 비친 각각의 면을 촬영한 것을 4대의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실제 상황과 같이 재현하였다.

"We are the Robots ⓒ unzi 2002"란 작품은 얇게 만든 3차원 (데스마스크) 스크린에 프로젝션한 입체 동영상 작업이다. 살아 있는 조각을 꿈꾸며, 앞으로 있을 3차원 동영상 시스템의 미래를 기원한다.

최근에는 "윈도우 Window ⓒ unzi 2005"를 통하여 LCD 모니터의 백라이트를 제거하여 실제 모습들이 투영되여 보여지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장지희(수원대 교수)의 작품 “늪 Marsh ⓒ 장지희 2003”은 공간을 포함시키는 절묘한 작업을 보여준다. 풀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은 생략된 부분의 힘이 더욱 크다. 애처로운 영상은 불필요한 것처럼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다가 힘들게 뛰어 오르는 작가 자신의 얼굴 부분이 보였다 사라질 뿐이다.

애쓰는 노력만큼 그 공허감도 크다. 사라질 때 떨어지며 내는 ‘쿵’하는 소리가 공명되어 관객의 가슴을 후려친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스크린(영상) - 보이지 않는 그 행동(act)이 관객의 뇌리에서 상상으로 가라앉고 있다.

곧 떠오르리라는 기대감마저 드는 것은 가시(可視)와 비가시(比可視) 차이로 존재 여부를 간단히 결정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떠오르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 연민이 많은 인간의 속성에 내재하는 예민한 부분을 툭툭 치는 것 같다.

모든 예술은 관객에게 여지를 남겨 놓는다. 그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논리를 앞선 동양사상과 흡착되어 있다.

나준기(동명정보대 교수)의 경우는 둥글게 바닥에 설치된 8대의 모니터들이 위에서 돌아가는 전구의 불빛을 받음으로써 영상이 그 때마다 변화하는 작업을 선보인 적이 있다.

같은 메카니즘을 이용한 작업을 인간의 눈높이가 디스플레이 되도록 제작한 “Zero Point ⓒ 나준기 2001"의 작업 또한 독특하게 만들어진 몰입형 비디오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스테레오스코피를 이용한 입체 영상을 재현하기도 하였다.

문주(서울대 교수)는 정교한 작업을 하는 미디어 작가다. 일단 비디오 설치를 주로 하는 그는 하드웨어를 꽤 중요시 여긴다. 바다의 수평선에 맞게끔 진열된 모니터들이 그 수평을 맞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영상과 호흡을 일치 시킨다.

이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확장된 것이 하나도 없는 화면인데도 마치 시간변동에 의해 시야가 자유스러운 느낌도 든다. 반면에 그 수평선의 불일치가 생길까하는 우려의 조바심도 생긴다.

현재의 달이 곧  10년후의 달

바다를 보면서 우리의 시야가 움직이듯 화면 프레임이 움직이는 작품은 키네틱과 영상이 어울려 이루어 내는 인터랙션의 장을 열었다. 유리 구슬들을 바닥에 설치된 여러 대의 모니터 위에 얹어 놓은 작품을 할 때부터 그를 주시하였다.

그의 제자들과의 전시에 선보인 작품 “모더니즘 강시”에서는 두 남녀가 제자리 뜀뛰기 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프레임이 움직이던 것이 이번에는 영상물의 소재가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은 몸에 붙어 있는 부위들의 당연한 움직임을 관조하게끔 한다. 스스로의 폭력과 방조, 방관, 불가항력 등이 느껴진다.

한계륜(서울산업대 교수)이 2003년 “10년 후에..” (과학과 예술) 전시회에 발표하였던 “10년 후에 달”이 생각난다. 그는 현재(2003년)의 달을 촬영하여 10년 후의 달이라 하였다. 우리에게 변하지 않을 진리였으리라.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감성의 표출 방법이 다르다하여도 우리 능력 위의 순리의 흐름을 동경할 수밖에 없으리라.

현재 국내·외에서 한국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활발한 움직임과 성과를 내고 있다. IT 강국이라는 장점을 아우라처럼 업고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이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을 응용하는 시대에 뇌관처럼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격발시키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본다.

더 이상 안주하지 않는 열정의 한국 작가들을 보면 국내 미디어아트의 전망은 밝다. 2000년대에는 미디어 작가가 기하학적으로 늘어 자연히 젊은 30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다음주에 계속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며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소개하려 한다.

이 글을 쓴 김형기 교수는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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