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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신문사는 '하위문화의 방황 그 한계를 넘어서'라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
기획에서는 기존에 지녔던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정신이 거세되고 있는 하위
문화의 문제점을 장르별로 지적한다. 아울러 산적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까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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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위문화의 개념을 잡아보도록 하자. 사실 하위문화는 모호한 개념이
다. 서구의 문화연구가들이 자기네 문화의 특수한 현상들을 연구하면서 만들
어 낸 용어를 그대로 번역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히 어떤 문화적 현실을 지칭할 수 있는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
다. 특히 `하위'라는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며 그것이 지시하는 구체적 현실이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난 문화연구자들의 언술을 빌려 하위문화를 설명하자면, 이런 식으
로 말하면 될 것이다. 하위문화는 계급론적으로는 하층 프롤레타리아의 위치
를, 세대론적으로는 부모 세대와 갈등하는 청년 문화의 위치를, 성애론적으로
는 이성애에 반대되는 동성애의 위치를 지시한다. 또한 인종적으로는 유색인
혹은 혼혈인 정체성의 위치를, 공간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안정된 주거 공간
과 반대되는 슬럼이나 게토의 위치를 지시한다. 하위문화라는 개념은 이렇게
계급과 세대, 성과 인종, 공간 등의 복수적 주체와 공간이 얽혀 있기에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위문화에 대해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주류 문화
로부터 주변부화된 것, 지배적인 가치와 도덕으로부터 배격당한 것이라는 점
이다. 그리고 달리 보자면, 하위문화는 그 내부적 능동성으로 주류문화를 거부
한 것이며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를 배격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그런데
이즈음, 하위문화의 주체와 양태 등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언론의 선정적인 보
도와 대중매체를 통한 상품화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한
편 으로 `하위문화'라는 개념의 대두와 그것을 둘러싼 문화 담론의 전개에서 알
수 있듯이 학문적이고 진지한 논의 역시 진행중이다.

지금 우리도 그것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볼 참이다. 애당초 `학문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따라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니 개념화 작업에 매달릴 필요는 없겠다. 일단
이 지면에서 문제삼고자 하는 `하위문화'는 비주류, 소수, 언더그라운드, 얼터너
티브 문화 등을 (각기 미묘한 의미 차이를 두고 쓰이기는 하지만)모두 포함한 용
어로 쓰기로 하자(편의상).어쨌든 우리가 말하는 하위문화는, 그 동안 주류 장르
에 의해 무시당하고 주류 매체와 무대로부터 배제당했으며, 많은 대중들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기 고집과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으
면서 천편일률적이고 견고해 보이는 주류질서와 불화하여 끊임없이 부딪치고
싸워왔다. 그것들의 존재는 주류를 불편하게 만들고, 충격을 주어 파열구를 내기
도 했다. 그것이 하위문화의 존재 이유이자 방식이었고, 하위문화의 힘과 가능성
을 믿고 편들어 주던 이들의 기대였다.

그렇지만 요사이 문화 판도를 살펴 보건대, 문화 다원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하
위문화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서인지, 복제된 대중문화 상품들에 식상한 소비자
들의 취향의 변화에 의해서인지, 하위문화는 그 고유의 성격을 잃어버린 듯하다.
즉 주류문화와 다른 독특함을 내세워 귀여움을 받으면서, 주류매체의 무대에서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것은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
로 피지배를 저항과 동일시하는 비평가들에게 `진보'라는 이름을 덤으로 얻으면
서 부추겨지기도 한다. 대중매체와 비평가들의 언어에 의해 선정적으로 포장되어
그 존재를 규정받고 있다. 또한 주류 문화에 뇌동하는 것보다는 비주류, 언더그라
운드, 하위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우월한 감수성과 진보적인 의식을 가
진 것이라 생각하는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것을 무기로 권력을 획득
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

이러한 상황이라면, 지금 하위 문화라 불리는 것들은 이제 대중문화계의 게릴라
가 아니라 상품일 뿐이다. 더 이상 주류문화와 싸우지 않는 하위문화는 그 정체성
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이너리티 주체들의 목적의식 없는 무작정 서구 따라하기나,
억지스런 끼워맞추기도 답답한 모습이며, 싹수만 조금 보이는 하위문화를 대단한
에너지로 치켜세우고 있는 평론가들의 선정적인 말발 역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젠 하위문화들의 진정성과 지속성을 의심하고 그것들의 불성실함과 억
지에 대한 공격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현학적인 모
습으로 대중들을 협박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앨범 한 장 만들어놓고
진정한 저항이네 하며 떠들어대는 록 그룹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매니아주의가 바
로 그렇다.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의 진동을 읽어내지 못하는 대학문화가 그렇고,
태생적인 진정성만을 무기로 대중들을 기만하는 민중문화가그렇다. 대중들에게
진보적 대안교육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문예아카데미,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열고 있는 문화예술강좌들의 교양을 강요하는 폭력적 계몽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또한 제도권 문화교육의 빈틈을 메우는 교육의 장이라는 자신들의 입지
를 굳혀나가면서 틈새 권력을 창출하고 있는 듯하다.

어제의 아방가르드가 내일의 주류가 되고, 자본은 주목받지 못한 문화, 제도화되
지 않은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 손
들어 주기를 통해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극히 주류의 틈새를
엿보고 군소권력을 선언하고 창출하는 것을 가리키는가? 주류문화에 파열구를
내지 못하고 억지권력 선언, 틈새 권력의 창출에 급급한 모습, 매너리즘에 빠져
더 이상 변화하려고 하지도 않는 지극히 보수적인 자세…. 이젠 무조건 접어주고
눈 감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위문화의 탄생과 활약이 문화 다원주의와
문화적 민주주의를 풍요롭게 했다지만,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주류와 권력의 위력이 여전한 오늘, 싸우지 않는, 길들여진 하위문화에 어떤 돌파
력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노염화 <오늘예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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