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과학시술 민주화 현장 (4) 독일
  • 중대신문
  • 승인 1998.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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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함께 유럽을 이끄는 양대 강국 독일은 한국과 달리 첨단 기술발전과 관련한 노사
간 논의가 활발하다. ‘금속노련(이게메탈)’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노동운동이 존재하기 때
문이다. 첨단기술과 관련해선 지난해의 ‘재택근무’ 논쟁이 대표적이다.

민영화한 독일통신(도이치 텔레콤)과 체신노조는 96년말 오랜 논란 끝에 재택근무 관련 협
약을 체결했다. 노조진영은 협약체결을 일제히 환영했다. 날카로운 쟁점이던 근무형태와 관
련해 노조쪽의 ‘순환제’ 재택근무안(일정 기간은 집에서 일하고, 일정 기간은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노조쪽의 애초 주장대로 재택근무자들이 고용
안정과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안전판이라 할 노조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반면 노동자들의 개별협상을 통해 이들을 자유직 또는 반자유직 노동자로 만들어 노
조의 장악력 약화와 비용절감을 원했던 사용자쪽의 의도는 벽에 부딪혔다.

노조의 주도권이 관철된 협약은 재택근무의 ‘사회적 표준’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지멘스
와 휴렛팩커드, 아이비엠 등이 이 협약에 근거해 일부 사업장에 노사합의로 순환제 재택근
무를 도입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련(이게메탈)등에서도 관련 협상을 벌였다. 협
약은 기술발전이 강제하는 노동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노조쪽의 고민의 결과다. ‘세계
화’ 또는 ‘정보화’라는 깃발아래 폭주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의
대응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91년부터 활동해오며 ‘협약안’ 마련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노조연맹에 소속된 ‘기술의 사회적 형성을 위한 포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럼의 벨프 슈뢰터(44) 위원장은 “노조도 자본가와의 대결뿐만 아니라 세계화 추세나 첨
단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의 변화에 노동자의 방침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말로 포럼의 문제의식을 밝혔다. 포럼은 노조 관계자, 전문연구자, 일반 시민 등 9백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각지의 8백50여개 노동평의회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노조의 공식 조직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노조 주도로 기술의 민주적 형성·발전을 추구하는
개방형 조직이다.

포럼은 ‘정보통신기술’이나 ‘태양열 이용’같은 환경친화적 기술개발등 ‘기술과 노동의
인간화’에 집중한다. 예컨대 배기가스 문제에 대해서는 벤츠나 베엠베 공장에서 배기가스
관련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현장 노동자들과 젊은 전문 연구자들이 프로젝트팀을 만들
어 노조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식이다. “중요한 것은 노사간의 대결 또는 타협이 아니다.

더욱 인간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미래를 위해 노동자들이 기술의 형성·발전에 주도적으로 참
여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절실하다.” 슈뢰터 위원장은 ‘발상의 전환’을 촉구
했다.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기술문제에 대한 독일 노동운동의 고민은 전면적이다. 독일노조연
맹(DGB)은 96년 ‘노동의 미래와 현재의 구조적 위기, 노동의 변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
이란 이름으로 지난 81년 이래 15년만에 강령을 바꿨다. 노동운동의 국제활동 강화와 노동
자적 기술정책으로 자본의 세계화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금속노련이 그 유명한 ‘노동의 인간화 및 자동화’ 부서를 없애고 ‘기술혁신부’를
새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별 기업 또는 산업별 노조체계만으로는 자본의 세계화,
첨단기술의 발전이 불러오는 총체적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공세적이라기보다는 수세적이다. 세계화한 자본의 공세에 밀려 조직력
이 흐트러지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이탈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와 기술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라는 것이 타협과 개량주의의 다른 말 아니냐’는
질문에 슈뢰터 위원장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지금 다른 길이 없어 보인다”
며 곤혹스러워 한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 탓이 크다. 이는 자본운동은 지구화한 반면 노동
운동은 일국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래로부터의 지구적 연
대’가 아쉬운 때다.

이제훈<한겨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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