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빠~앙” 어둠이 짙게 깔린 터널 속에서 외마디 경적소리가 울려 퍼진다. 곧이어 뿌연 먼지 속에서 하얀 전등빛을 내뿜는 열차가 플랫폼에 서 있는 승객들 주변을 스쳐지나간다.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무표정한 승객들의 표정과 대조된, 긴장에 가득 찬 한 얼굴이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지하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지하철 가장 앞 칸에서 ‘오늘은 무슨 사고가 있지 않을까?’라는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기관사와 눈을 마주쳐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관사실’이라는 지하철 안의 또 다른 공간, 그리고 그 낯선 공간의 주인인 지하철 기관사와 함께 오후 6시 17분 방화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기관사실은 생각보다 매우 협소했다.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는 운행에 필요한 수많은 장치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출입문을 닫습니다. 승차하지 못한 손님들은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십시오.” 5664호 방화행 열차를 책임 질 기관사 최윤용씨의 목소리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그는 플랫폼 양쪽끝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사실 밖의 문을 열어 다시 한번 승객들의 탑승 여부를 살핀다.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문을 닫는 단추를 누른 후 그는 지하철을 출발시킨다.

승객들이 탑승한 플랫폼을 빠져나오자 끝없는 흑백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따금 반짝거리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온통 암흑천지였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지하철을 탔을 때 차창 밖으로 비치던 깜깜한 벽만을 상상하다 직접 기관사실에 탑승해 보니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흑백의 통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SF 만화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컴컴하지만 확 트인 통로는 아치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기관사실 옆 칸에는 승객들이 앉아있었다. 기관사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승객 칸이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긴장감의 연속인 지하철 기관사의 모습과는 다르게 대부분 졸고 있거나 수다를 떠는 한가한 모습이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승객과 기관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그날은 상상하기도 싫어요. 여의나루 역에서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지하철 밑에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열차가 지나간 후였어요.” 여의나루역에 도착하자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이 최윤용 기관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행히 몸의 대부분이 지하철 밑 여분의 공간에 들어가 있어서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어떤 기관사는 실제로 인명사고를 겪었는데 승객이 갑자기 열차로 뛰어 들었었데요. 열차의 앞 유리에 승객의 몸이 튕겨져 나갔는데 그때 피범벅이 된 승객과 눈이 마주쳤을 때, 몸서리가 쳐질 만큼 끔찍했다고 하더라구요.”라고 말을 잇는 그의 표정에 생생한 공포가 서렸다.

사상사고가 발생하면 지하철 기관사 혼자 시신을 처리하고 피묻은 장갑을 낀 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지하철 운전대를 잡아야 한단다.

지하철 기관사는 매일 5시간 정도의 운행을 두 차례 나누어 담당한다. 운행하는 시간 동안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실 이용도 모두 금지된다. 1시간이 지나자 열차는 대화역에 도착했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하지만 잠깐의 휴식도 없이 기관사를 따라서 열차 맨 끝에 위치한 기관사 실로 걸어갔다. 잠시 숨돌릴 틈도 없이 열차는 아까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다시 출발했다.

침묵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기관실 TRS폰으로 중앙 관리실에서 ‘속도가 늦으니 최대한 빨리가라’는 재촉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 지하철의 운행 속도와 방향에 대해서는 중앙 관리실에서 모두 담당하고 있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최윤용 기관사에게 지하철 운행에 있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묻자 그는 승객과의 소통을 꼽았다. “기관사와 승객간의 상호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죠. 대부분 승객에서 중앙관리실을 거친 후 기관사에게 불편이 신고되요.” 이러한 문제점은 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큰 비극을 낳기도 했다.

운행시간이 1시간 30분쯤 지나자 귀가 멍멍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터널 속의 쾌쾌한 공기와 소음이 몸을 엄습해 왔다. 하지만 최윤용씨는 이러한 것이 아무렇지 않다. 이미 5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그로서는 매우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이러한 환경조건 때문에 대부분의 기관사들은 눈이 피로하고 청력이 감퇴되며 코와 입, 순환기의 장애를 경험한다. 벌써 몇 명의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로 불편을 겪는 것이 밣혀졌으며 심지어는 목숨을 스스로 끊는 기관사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 오늘도 끝없는 어둠 속을 달리는 기관사와 사람들 ⓒ 중대신문 이지은
2시간 남짓한 지하철 운행을 마치고 기관실에서 나왔다. 좁은 지하철 안에서 홀로 운행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사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오늘도 지하철 기관사는 수 천명의 목숨을 홀로 담당한 채 어둠을 뚫고서 끝이 없는 질주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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