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코리아에 따르면, 2004년 1,000억원대 재산가는 63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2명이 늘어났다. 1위인 이건희 삼성회장과 부인은 4조 6,2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 아득한 액수이다.

재벌과 정치인들이 주고받았다는 돈다발을 빼곡이 채운 사과상자를 들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1억원이라는 액수도 잘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4조원이라니, 하물며 개인의 재산이라니.

2004년 전체 노동자 월평균 급여는 162만원으로, 이 돈을 연봉으로 환산해서 이건희 회장 부부가 소유한 재산과 비교하면, 약 237,654배의 차이가 난다(최저임금은 월 59만3560원이니 직접 계산해 보라). 갈수록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비정규직과 저소득이 확산될 때, 1,000억원대 재산가의 재산 총액은 총 25조 2678억원으로 작년보다 4조 3491억원이 증가했다.

빈부격차의 심각함을 인식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빈부격차와 소득격차 해소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안전망도 더욱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격차가 좁혀질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1,000억원대 재산가가 될 수 있을까?

19세기에 맑스와 자웅을 겨뤘던 프랑스의 사상가 프루동(Proudhon)은, 자본가가 착취하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만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협동노동’과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사적 소유를 절대시하는 것이 ‘도둑질’이라고 주장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혼자 일해서 4조원의 재산을 모을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개인의 재산, 하물며 절대적인 사유재산일 수 있단 말인가?

한때 ‘파이를 키워라’ 라는 얘기가 유행했다. 작은 파이를 놓고 다투지 말고 파이를 키워서 몫을 늘이라는 말이었다. 그럴싸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빈곤의 심화와 좌절감의 확산,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무조건 파이를 키우는 것은 미래세대의 몫을 빼앗는 범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나눌 파이는 언제나 충분했다.

옛날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Caesar)는 60세르테르스 이상의 돈을 집에 보관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강요하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돈을 갚도록 했기 때문에 채무자와 채권자를 성공적으로 화해시켰다.

분명 고통은 함께 나눌 때 줄어든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얘기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는 논리일 뿐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을 남겼다. 이제 곳간을 열 때이고, 열지 못하겠다면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글을 쓴 하승우씨는 경희대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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