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학생운동의 위기를 얘기하고 그 극복방안을 부르짖고 있다. 어떤 이는 한총련 내에
서 혁신을 주장하고 있고 또 다른 이는 한총련이 아닌 다른 연합체를 얘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더이상 대중과 괴리된 채 말라버린 껍데기로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주로 상층단위에서 진행되어 오던 이러한 논의들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고 각 세력들간의
입장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지난 96년 8월 한총련의 범청학련 통일축전 강행은 사회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
게 추진됨으로 인해 다수 민중과 운동진영의 엄호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집권세력은 매서운 공안의 칼날을 휘두름으로써 학생
운동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학생사회의 자치권이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정권의 탄압의 빌미가 되었기에 ‘통일축전’이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계급 역관계와 현상황의 과학적 분석속에서 과연 그 무리하고, 몰정세적인 투쟁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뚜렷한 해명이 되지 않았기에 분명히 대중적으로 지적받고 평가되
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고 했다. 어쨌거나 한국학생운동은
그 이후 폭발적인 ‘위기’의 담론에 직면하였고, 각급 대중단위에서 ‘통일축전’을 계기
로 한 ‘학생운동대토론’이 벌어지게 되었다. 또한 보수언론의 공적이 크겠지만 이러한
‘운동’의 방향에 대한 관심이 몇몇 활동가가 아닌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
하였으며, 학생운동의 미래 전망을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데 있어 일정정도의 기반이 조성되
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정권에 의해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으로 자행되는
‘학생운동, 학생자치권 죽이기’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 비로
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시기 한국학생운동의 최대 주류를 형성하며 전국 최대
의 단일조직을 구축해 왔던 전대협-한총련 운동에 대해 근본적이고 진지한 비판적 평가를
진행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전대협-한총련 운동 속에서 왜곡되어왔던 한국학생운동
의 본질을 규명해내기 위해서이며, 이 보다 더 진일보한 한국학생운동의 새로운 질서를 형
성하고 진정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96년 가을 이후 전대협-한총련 운동에
대한 수많은 문제제기는 결코 한국학생운동의 단일한 흐름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96
년의 합리적 평가없는 ‘승리의 96년 연대항쟁’의 기치아래 미국반대, 전민항쟁의 허망한
깃발을 들고 질주하는 한총련 대오만이 목도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올 6기 한총련 건설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노정한 결과 필연적인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학생운동을 대표해 왔던 전대협-한총련 운동은 그 내용적으로 학생운동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 하기에 그 운명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에 직면하여 있으며, 학생들의 평가아래
오래된 ‘역사를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행보는 수백만 노동자 민중의 삶을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가운데 변혁
운동에 대한 다양하고 치밀한 탄압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일 것이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
하고 진정한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위한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구래의 낡은 질서와 사
상을 마감하고 처음부터 다시, 학생대중의 지지와 참여 아래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
이다.

비록 기초부터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권과 자본의 파상적인 공세에 흔들릴 수도 있겠
지만, 이것이 무서워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을 경우 학생운동이 근거하고 있는 학우
들로부터의 외면과 고립이라는 더욱더 혹독한 대가를 치룰 것이며 역사의 비판적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각인하고 학생운동을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길에 힘차게 나아
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한총련 중앙상임위와 한총련 중집 내에서 폐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6
기 한총련 건설과정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중적으로 평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다.

기간 전대협-한총련 운동에 대한 대중적 논쟁과 토론의 기회를 지역, 지구별로, 그리고 전
국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다양한 논쟁과 토론의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전국
적인 모임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중운위와 단대운영위들에서의 구체적 방식을 논의하도록
해 보자.

위의 대중적 논쟁과 토론기회가 더욱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총련운동에 대한 각 지역
별 총투표를 포함한 전대협-한총련 운동에 대한 평가 기회를 창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
여야 할 것이다. 개별 대학에서는 각종 설문조사들을 통해 샘플링된 학생들의 의견을 총화
하고 이 결과들을 발표함으로인해 대중사이에서 한총련 운동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각
종 대자보 선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생대중 속에서 화두를 이끌어 내자.

이를 기반으로 각과 학생회와 학회에서는 짤막한 토론 자료라도 공유하여 현재 벌어지고 있
는 학생운동 상황에 대해 대중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열며 지속적인
논쟁과 토론속에서 가능하다면 향후 학생운동의 방향을 천명할 수 있는 직접 총투표 등을
계획하고 이를 치밀하게 조직화 하자.

두번째로는 신자유주의 하 자본의 파상적인 공세와 이속에서 소외당하는 노동계급의 보편적
해방을 위한 사상적 지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남한 사회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
석을 통해 자본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자유를 위한 실천과제를 도출하고 이를 천명함으로
인해 한국학생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사회 근본모순을 은
폐하고 한국학생운동의 지향과 방향을 왜곡하였던, 더 나아가 한국사회 변혁을 가로막는 대
립물로 전화할 수밖에 없는 낙후한 시대인식과 협소한 민족주의 사상에 대해 명확히 평가하
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본질적으로 반노동자적인, 개혁적 신자유주의 분파인 김대중정권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 타협하려고 하는 개량주의 세력의 지향을 철저히 비판하
고 이것이 한국학생운동의 타협점이 될 수 없음을 만천하에 천명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한국학생운동을 대표할 수 없는 전대협-한총련 운동을 극복하고 새로운 학생운
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학생들로부터 직접적인 대표성을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관건이다.
학생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대표성을 인정받는 조직을 건설하고 이러한 직접민주주의 방식
을 통해 지도부가 건설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적극 알려내며 실물화 시켜나가도록 하자.

현실에서 이러한 것이 가능하겠는가? 라고 말하지 말자. 지난 학생운동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
지 않고 패권적 대의제의 운영을 통한 위기를 경험하였다면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자 하
는 사람들은 당연히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비록 ‘운동권
과 일반학생’의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대다수 학생들에게 필요성을 인정받고 대표체
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학생대중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진 자치기구이기 때문
이다. 바로 이속에서 책임이 부여될 수 있으며, 그 책임에서부터 올바른 행동이 나올 수 있
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학생들에 의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기반과 대중운동을 복원하기 위
한 노력이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대중운동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상이한 정치사
상과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양한 대중운동을 가로막아서는 안되며 이러한 대중운동
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학생들의 직접 행동에 의해 구성되어진 학생자치기구는 그 자체로 학생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대표기구에의해 진행되어지는 다양한 행동은 일단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데 기본적인 책임성을 부여받을 수 있으며, 또한 이렇게 보장되어진 학우들의 참여는 그 자
체로 학생사회의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즉 서로간의 피드백 과정은 대
중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를 관장하는 책임성을 부여하면서 보다 활발한 대중정치활동을 전
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면서 학생사회를 활성화 시켜낼수 있는
방안이다.

한국학생운동의 부흥을 위하여 더욱 많은 평가와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
가와 논의가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진행된다면 한국학생운동은 민중지
향성과 예언자적 전통으로 시대를 선도해왔던 자신의 가치지향을 대중적 실천으로 발휘해내
지 못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국의 학생운동과 학생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결의로
한국학생운동의 근본적 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동지적, 대중적, 실천적 대중운동
을 전면화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재정<연세대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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