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는 정말 시끄러운 소설이다. 등장인물끼리 주고 받는 편지들로 구성된 600페이지의 이 서간체 소설은 시종일관 고상하고 예의바른 어투로 단 한 가지만을 말하되 그 한 가지는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 방대한 수다가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욕망은 늘 은폐되어 있거나 혹은 다른 것으로 모습을 달리하여 등장하며,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위험한 관계>가 수많은 영화들로 리메이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매력이다.

1989년 스티븐 프리어즈가 감독한 <위험한 관계>는 원작의 논리와 가장 비슷하게 원작을 영화적으로 다시 쓰고 있는 영화다. 라클로가 편지라는 독특한 서사를 통해 욕망의 구조를 형식화했다면, 프리어즈는 이를 실내극의 관객성과 로코코의 도상적 이미지, 그리고 인물의 클로즈 업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힘을 통해 시각적으로 다시 번역해낸다.

단순히 시대의 재현에 방점을 둔 코스튬 드라마의 설정을 넘어, 프리어즈 영화는 17세기 로코코 회화의 낭만성과 프랑스 왕정 말기의 퇴폐성, 그리고 클로즈 업의 미학 사이에서 끊임없는 기표의 놀이를 가능케한다. 시각적 기표의 놀이야말로 욕망의 거미줄을 재현하는 가장 짜릿한 영화의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바로 이 매혹적인 번역에 착안한 영화다. 게다가 <스캔들>은 편지로 쓰여진 욕망을 시각적 기표로 다시 쓴 <위험한 관계>의 작업에 왕정 말기 프랑스 사회를 18세기 조선시대로 바꿔버리는 또 다른 번역을 시도한다. <스캔들>의 리메이크가 흥미로운 것은 서구 귀족 사회의 욕망을 조선시대로 소환했다는 점이 아니라, 예술매체 사이의, 그리고 문화 사이의 번역이 어떠한 과정을 드러내는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원작의 서사가 가진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오되, 이재용은 로코코에 대하여 프리어즈가 그랬듯이 사대부 집안의 실내 구조에서부터 조씨 부인의 화려한 가체와 노리개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를 양식적으로 재현해내기 위해 강박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요컨대, <스캔들>은 욕망이라는 주제가 가지고 있는 우주적 보편성을 영화적 시각성을 경유하여 이미지의 지역성이라는 언어로 번역해 내고 있는 영화다.

개봉 당시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는 앞의 두 키워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또 다시 21세기 한국의 대중 영화라는 또 다른 자장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결국 <스캔들>의 리메이크가 갖는 가장 흥미로운 논점은 문화와 매체 사이의 번역가능성, 혹은 그것의 잘됨과 어설픔의 평가가 아니라 아니라 이러한 번역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현대 한국 대중 영화의 징후다.

이 글을 쓴 박진형씨는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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