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비가 내리는 중부고속도로. 시간은 저녁 9시.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외
침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를 향해 스피드건을 ‘쏜다’. 이것은 경찰의 추격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양심’을 찾고 있는 장면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여러분은 양심이 있습니까?”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우리는 그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 프로에서 시속 80킬로미터의 ‘경제속도’는
‘양심속도’가 되고, 시속 1백킬로 이상으로 달리는 차는 ‘이상한 차’가 된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는 간다. 하지만 이경규는 목적 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양심’을 찾으러 간다. 96년 11월 ‘교통신호 지키기’로 시작된 이 프로는 97년 8
월말부터 ‘청소년보호법’(이 법은 9월부터 시행되었다)과 관련해서 ‘양심 가게’를 선정
했다. 그리고 올 해 초에는 ‘노약자 짐 들어주기’를 통해 사회의 양심이 사라졌음을 그대
로 보여주었다. 처음의 ‘교통신호 지키기’의 국민참여도는, 일본의 사례를 통해 한국인 특
유의 자존심을 건드려서인지, 사회적으로 대단한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한 결과로 이경규는
수많은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드디어 IMF 구제금융 신청. 이 프로가 이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래서 2월부터는 ‘경제속
도 지키기’라는 기름, 곧 달러를 아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양심 냉장고’의 명
칭은 ‘양심 절전 냉장고’로 되었고, 등장인물도 교체되었다. 작년에는 청소년문제와 관련
되어 있는 강지원 검사(청소년보호위원장)였으나, 요즘에는 이정기 홍보차장(에너지관리공
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프로의 정당성과 공익성을 보증해 주고, 신문선은 모든 일을 축
구경기로 환원하여 사회의 제도와 법―그 예로 청소년보호법과 경제속도―의 우위를 변호한
다.

왜 ‘양심’인가. 양심은 우리의 신체와 마음에 각인된 선험적이고 내재적인 성격을 가진다.
어려서부터 양심적인 사람이 될 것을 훈육 받은 우리들은 어느새 ‘양심’과 ‘하늘’을 동
등하게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양심을 걸고’ 맹세한다든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
러움도 없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이처럼 양심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수 있는 이
유는 양심이 가지는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특성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경규가 간다’에서 ‘양심’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이 프로에서는 ‘양심’이
가지는 본래의 성격은 사라진다. 그것은 청소년들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않는 가게주인만이
‘양심’이고,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이 모두 빨리 달려도 혼자서 경제속도를 지키는 사람
만이 ‘양심’이다. 이제 ‘양심’은 사회의 특별한 몇 사람만이 소유하는 특권적인 것이
된다. ‘양심’은 그 자체가 권력이고, 그 양심을 규정하는 이경규는 양심의 ‘입법자’이며
‘양심 대통령’이다.

고해성사에서나 가능할 개인의 내밀하고 깊숙한 영역인 ‘양심’은 이제 표면으로 드러났
다. 이 양심을 정의하는 타자의 존재는 양심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추방과 배제를 전
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함으로써 양심 있는 한두 명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럼으
로써 양심의 ‘있음’과 ‘없음’의 문제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띠며 우리의 일상에 개입한
다.

대중들은 ‘양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넌 양심이 있어,
없어?”라는 질문에 대해 혼돈을 겪게 된다. 이때 ‘없어’하게 되면 스스로를 타자화시키
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한 대답이다. 하지만 이 프로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은 거의
양심이 없다. 그래서 주체는 타협을 시도한다. 즉 있음과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은 있
어야 돼’하고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난 인간이고 양심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수많은 사람
이 양심이 없다 할지라도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양심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프로가 보여주는 사례들이 과연 ‘양심’의 유무를 가르는 공준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양심이 있는가 없는가’의 이분법적 질문뿐이다. 청소년보호법과 경제속
도를 잘 지키면, 양심이 ‘있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청소년문제와 국가 경제위기가 모
두 해결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넌 양심이 있어, 없어?”

권경우<영문학 석사 4차>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