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지배해왔던 수하르토가 없는 인도네시아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선 많은 논란
이 있다. 아직 신정부라고 할 만한 정부가 없는 가운데 지난 22일 하비비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승계받아 새내각을 발표하기는 했기만, 하비비 정권은 과도내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진정한 의미의 신정부는 아니다. 따라서 이번 반
정부 시위의 배경과 사태진전을 추적하고, 그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이후 전개될 인도네시
아의 투쟁과 민주화과정, 그리고 이후 정국방향을 가늠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우선 이번 인도네시아의 실천적 저항의 주도 세력은 학생이었다. 이것은 다른 면에서 철저
하게 시민이 없는 학생중심의 투쟁이었고, 기존 정치권의 권력암투로 인해서 가능한 것이었
다.

그러나 수하르토 족벌 체제의 연장에 항거한 초기 학생운동은 지도부도 애매했으며, 학내에
서 제한된 학생의 숫자가 대중적 지원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했었다. 하
지만 이 시위는 작은 규모이기는 해도 수도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현상으로 자리를 매
김했다.

이런 학생세력의 실천과는 별도로 사회·경제적인 불만으로 인해 약탈을 일삼고, 비도덕적
인 방법으로 소극적 저항을 벌인 조직화되지 못한 민중들의 투쟁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 영역이 조직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학생주도의 이번 저항이 민주주의로 가는 도정
에 커다란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체제를 비롯한 경제 위기는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심화시키고 반수하르
토 정서가 심화되고 확대되는데 결정적 원인제공을 하였다. 이런 대중들의 분노는 초기에
반화교적인 행태를 띄고 주로 화교중심의 상점을 약탈하는등 기존 체제와 질서를 와해시키
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IMF와 일정한 경제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던 수하르토 정권은 이를 용인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이를 대외적인 협상카드로 사용해 왔다.

즉 인종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이용하여 대외적인 독자성을 과시하면서, 내적인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 따라서 사태 초기에는 보안군과 경찰은 이런 대중들에 자발적인 약
탈 경제를 용인하는 경향을 띄었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부가 IMF와의 주요 쟁점 가운데의 하나인 빈민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
고, 유가와 식료품 가격을 살인적으로 인상하면서 인도네시아 사태는 좀더 복잡하게 흘러
가게 되었다.

그러면 이번 인도네시아 학생 저항운동은 어떤 의미로 볼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 측면을 더 규명해야 한다. 하나는 인도네시아 정치권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
국에 대한 태도다. 학생들은 반정치권적이라기 보다는 반수하르토적이었고, 반제국적이라기
보다는 친미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

수하르토를 하야시킬 수 있었던 것은 특히 학생들의 저항을 이용한 인도네시아 정치권의 권
력투쟁의 격화를 들 수 있다. 우선 정치권은 지난 3월 대선에서 수하르토를 인정했지만, 고
령이었던 수하르토의 후계문제가 계속 쟁점이 되었다. 이를 두고 집권 골카르당의 당료들과
하비비로 대표되는 기술관료 그룹, 그리고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사령관의 권력 암투가
본격화되었다. 즉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학생과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적극적 정치
적 실천을 틈타 30년 이상의 수하르토 체제를 반전시키려는 정치권의 쟁투가 본격화 된 것
이다. 수하르토가 정권을 유지해 왔던 주요한 전술인 정치권력의 분할을 통한 각 정치세력
의 지배 전략이 거꾸로 수하르토에게는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민주주의 경험이 거의 없는 인도네시아 대중들, 특히 이번 반정부 투쟁을 적극
적으로 이끌었던 학생들까지도 국민협의회를 통한 신정권 창출, 또는 하비비로의 권력 이양
의 위헌성 등의 제도적이고 기능적인 주장을 한다. 아니면, 이들은 수하르토의 처벌과 재산
몰수 등과 같이 과거 지향적인 목표만을 내세우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미국의 역할에 대한 태도이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한 세계 지배 국가로서
자기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다소 비군사적이지만 그 보다 더 구조적인 금융 또는 경제에
관한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해 왔다. 이런 상황은 현재 아시아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와 맥을
같이 하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초기에 수하르토는 미국의 의도를 수용하기 보다 이에 저항
했다.

따라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와의 군사훈련을 유보하고, 결정
적으로 다른 정치세력을 세우기 위한 다각적인 정치세력과 접촉을 했다. 결국 수하르토가
몰락하기 하루 전날에는 그의 퇴진을 직접 요구했다. 또 미국은 미 국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22일 ‘미국이 4백3억 달러에 달하는 IMF의 대인도네시아 구제금융 지급재개를 지지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정계 개편에 개
입할 것임을 천명했다.

미국은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수하르토의 사임후 민주개혁을 단행하고, 모든 세력을 포괄
하며, 정부와, 국민간의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 저항
세력이나 권력내 새로운 권력을 형성시키려는 세력중에 반미적인 경향을 뚜렷히 보이는 세
력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국민협의회의 재편없는 즉 개헌없는 새정권 탄생은 친미정권의
수립을 의미하거나 일정한 한계를 배태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반정부 시위가 민주주의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지만 정치적으로 크게 신장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번 반정부 투쟁을 주도한 학생세력이 주로 계몽주의적 투쟁을 해
왔기 때문에 현실을 타계할 만한 정치력과 정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도 이번 사태에 거의 개입하지 못함으로써 기득권층만이 정치적
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반정부 투쟁이 의사당을 점거할 정도로 혁명적이었으면서도 국민협의회라는 어용기관
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반동적이라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학생들은 시위과정에
서 대중들의 일탈적 투쟁과의 차별을 시도함으로써 대중적인 시각에서 현지 사태를 잡아가
기보다는 주로 정치적인 것으로 사태를 몰고 갔다. 결국 학생들은 일반적인 민주주의적 제
도 개선투쟁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중의 불만은 어떠한 정치세력의 엄호도 받지
못한 채 경제적인 억압을 더욱 받기 쉽게 되었다.

이창수<한국문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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