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며 우리가 소위 ‘오빠’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 방송계, 특히
연예계는 주 시청자층인 십대들의 입맛에 맞게 프로그램이 구성되고 연예인들도 점점 연령
층이 낮아지고 있는 요즘, 이홍렬 동문(예술대 연극영화과 91년졸)이 서있는 자리는 남다르
다.

중학교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키워오던 이홍렬 동문은 1978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
진을 통해 그의 소원을 이뤘다. 그 후 80년대 개그계에서 성공을 거둔 그는 개그를 하면 할
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돌연 1991
년 이홍렬 동문은 일본행 유학을 결심한다. ‘활동 중 유학다녀와 성공한 사람없다’는 주
위의 우려에도 유학을 떠난 그는 연예계의 불문율을 깨고 더 창조적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
로 폭넓은 사랑을 얻는다.

“돌아와서 유학생들이 보고있을거란 생각에 일본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베끼는 건 문제지만, 나름대로 각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자꾸 보면서 고민하면, 새로운 것을 찾을 수있지 않겠나” 라는
그의 말에서 배움을 통한 창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몸으로 웃기기, 무조건 웃기고 보자는 식의 억지 웃음 만들기에 급급한 국내 개그계에서 그
는 소박하면서도 삶의 맛이 배어든 웃음으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특히 그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했던 ‘이홍렬쇼’는 시청률 20% 이상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토크쇼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식상해질 수 있는 개그계에서 그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는 7년전 일본 유학을 떠났던 것처럼 또다른 세계를 만나고 배우기 위해 미국 유
학을 떠났다.

“그간 활동도 많이 하고 박수도 많이 받았지만 중간쯤 지나면서 보니 나는 했던 이야기를
자꾸 또 하고 있었다” 라며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억지로 웃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일이란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습니다. 앞으로 가려면 노를 저어야 합
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지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항상 고여있는 것보다 무언가
를 배우는 일은 그 이상의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작은
거인’ 이홍렬 동문에게서 항상 배움의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일구는 중앙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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