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로 단장하기 전 망월동은 묘역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역사의 긴장이 감돌고 사람을
한없이 숙연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결하고 정의로운 죽음들
이 아직도 생생하게 눈앞에 아른거리며 지금도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불의와 분단, 반민중
적 권력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까지 겹쳐져 있어서 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새 묘역으로 단장한 후 첫방문이었습니다. 망월동은 바뀌어 있었습니다. 80년 5월과 지금의
현실이 바뀐 것은 무엇인데 망월동만 화려하게(?) 단장된 것일까요? 망월동은 결코 기념이
될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도대체 밝혀진 것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도 타지역에서는 광주사
태라는 말을 버젓이 쓰고 있으며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 그리고 대학살의 참상이 어떤 것
인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결코 기념이 될 수 없습니다.

80년 5월 광주 민중들이 죽음으로서 말하였던 참된 민주주의와 민중세상이 얼마나 왔습니까?
정권교체는 그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결코 80년 5월은 단순한 기념일이 되어
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남, 북한을 상대로 경제침략으로, 대북봉쇄로, 부당한 압력으로 일관하고 있
습니다. 그날의 학살대가로 받은 금뱃지들, 훈장들 아직도 하나도 박탈되지 않았습니다. 아
직도 암매장되어 찾지 못하는 실종자가 1백여명, 부상으로 평생 장애인으로 지내는 사람도
수백명,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수백인….

아, 어떻게 광주가 기념이 될 수 있습니까? 아, 어떻게 광주민중들의 한이 풀렸다고 생각하
십니까? 정권교체는 조그만 심리적 보상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광주민중들이 명예가 회복되
고 그들이 바라던 대로 민중이 주인되어 평화롭게, 평등하게, 그리고 광주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과 그들로 인하여 파생된 분단을 끝내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 이루어질 때 광주의 한
은 풀리는 것입니다. 길고 긴 이해와 노력, 더 많은 실천과 투쟁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5월
은, 광주는 명확히 현재진행형인 것입니다.

80년 5월을 역사 속의 기념으로 이야기하지말라, 무엇이 얼마나 밝혀졌단 말인가, 민족과 민
중의 비참한 현실 또한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비가 와서 마침 5·18기념 록페스티벌이
무산된 것은 천만다행인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록이 아무리 저항과 진보 정신을 가지고 시
작하였다 하더라도 한국의 록이 진정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고, 5·18관련
노래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던 록페스티벌은 그 자체로서 자기기만이고, 광주를 가벼운 기
념의 수렁으로 넣는 일이었습니다. 잠시라도 고개를 젖혀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고 눈을
감고 생각해 봅시다. 광주를, 5월을….

한 번은 깊이깊이 광주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주 대낮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에 의해 벌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전,노 일당이 구속되었다 금방
풀려 나오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사실들 속에서 한 시대, 한 땅에서 태어났고 살
았던 우리들에게 그들은 분명 뭔가를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여, 우리의 억
울한 죽음을 알아달라, 우리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달라, 그리고 우리가 외쳤고 해방광주에서
열흘간 실현했던 참민주주의와 민중이 완전히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해달라!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한 광주의, 5월의 목소리를 가슴에 담고 서울로 올라왔습니
다. 교정은 너무나 푸르고 생기가 넘치고 있었습니다만 5월, 그날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성년의 날, 좋습니다. 장미꽃 선물에 술먹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법적으로 성년이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하나의 책임있는 사회인으로서 성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분단과 민중의 아픔에, 5월의 항쟁과 학살에 대해서도 곰곰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성년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아직도 우리의 현실은 비참합니다. 이북에서는 3백만에 가까운 사람이 굶어죽었고 지금도
굶어죽어 가고 있습니다. 남은 정리해고로, 우리에게도 곧 닥칠 미취업으로 3백만에 가까운
실업자가, 홈리스가 비정한 도시의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가진자들은 고금리시대를 맞
이하여 더욱 흉측한 미소를 짓고있고 재벌들은 개혁에 저항하며 반성 한 번 없이 떵떵거리
고 있으며 수구반동, 보수적 정치인들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채 정쟁에 몰두하고 있습니
다. 여전히 38선으로 잘린 허리의 아픔은 깊어만 가고 있으며, 전 민족은 고통속에서 신음하
고 있는데, 오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월은 현재진행형의 투쟁이어야합니다.

<안진걸, 1캠 총학 대학개혁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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