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나라 중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등 57개국이고 전시범죄와 군 범죄를 제외한 일반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상대적 폐지국은 스페인, 영국 등 15개국에 이른다.

또한 벨기에, 터키 등 28개국은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기에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라들은 무엇 때문에 사형제를 폐지하는가?

사형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형벌이다. 하지만 과연 사형이 형벌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본래 형벌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을 어긴 사람에 대해 국가가 교화와 개선을 목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형은 국가가 범죄자나 살인범에 대한 교화와 개선을 포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은 진정한 의미의 형벌로써 집행되지 못하고 보복주의적 응보(應報)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순수한 응보로서의 형벌을 철학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칸트는 자신의 정언명제를 통해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을 수단으로 대우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목적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살인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 살인을 제도화시켜 놓은 현실은 사회구성원들을 목적으로 대하는 행위가 아니다. 국가가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빼앗아 국가가 만든 제도에 끼워 맞춤으로써 그를 수단화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범죄자에 대한 사형은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이다. 사회구성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까닭은 국가가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보호를 다하지 못한 결과이다. 살인범들 중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는 통계는 이를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범죄자에 대한 보호와 개선을 포기하고 그를 사형시킴으로써 사회존속을 꾀하는 행위는 국가적 직무유기일 뿐이다. 국가가 진정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면 범죄자들을 사형시키기보다 그들을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고 교화시켜야 한다.

사형존치론자들은 사형제를 통해 범죄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림으로써 범죄예방과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형제가 폐지되어 범죄발생률이 높아졌다거나 사형이 집행되어 범죄예방효과가 있었다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사형의 범죄예방효과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사형이 범죄예방효과가 있다면 범죄자를 공개처형하는 이란이나 북한 등에서는 범죄발생률이 극히 낮아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국가가 범죄자의 생명을 담보로 사회 안정과 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각성을 꾀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연쇄살인범이나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한 사형의 대안으로 가석방이나 감형이 없는 종신형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사형보다 종신형이 더 비인간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형과 비교해 종신형은 범죄자의 생명권을 강제로 박탈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와 애정이 바탕이 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살인범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해서 그가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까지 좌우할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국가는 그의 생명을 빼앗기보다는,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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