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말해, 안치환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부터 비롯된다. 하나는 노
래 운동 출신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 노래의 측면이다.

그런데 이 두 요인은 조화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게 일반적이어서, 안치환
을 얘기하는 것은 미학의 문제를 넘어선다.

대중음악 모두가 그렇지만.

1980년대에 안치환은 새벽, 노찾사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
서’ 등을 만들거나 부르면서 민중가요의 대중적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솔로로 독립하여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은 1980년대(식) 노래를
1990년대 대중 가요 공간에 그대로 방목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결과 실패
작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달라진 시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후, 철저한 자성(自省)을 담은 3집 ‘Confession’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무리없는 공감대를 가지는 류시화와 정호승 등의 시를 노랫말로 삼아 시각의
틀을 넓힌 점, 그리고 편곡 및 연주에서 그 동안의 아마추어적 잔재를 털어
버린 점은 이 앨범의 미덕이다. 특히 조동익과 함춘호의 편곡, 어레인지, 세
션 연주는 ‘소금 인형’, ‘귀뚜라미’ 등을 정갈한 서정의 세계로 갈무리하는
데 일조하였다.

안치환 자신도 ‘자유’에서 성공적으로 새로운 민중가요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와 같은 사랑 노래가 라디오에 종종 나오면서 안치환
은 기존의 대학생(출신) 수용자들 외에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수용자층과
새로이 접속할 수 있었고, 대학가와 소극장이라는 두 개의 거점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그는 이를 토대로 록을 접목시켜 가면서 민중가요와 사랑 노래를
함께 담아간다. ‘자유’에서 견지한 흐름은 ‘당당하게’, ‘한다’로,
‘우리가 어느 별에서’에서 보여준 경향은 ‘내가 만일’, ‘사랑하려네’로
이어지고 있다.

이 상이한 감성의 동거는 안치환의 음악관에서 도출된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더 많은 대중에게 소통되기를 희망하며 동시에 훗날에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전자를 위해 사랑 노래를 부르는 데 대해 상업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 문제는 사랑 노래라는 점 자체가 아니라 ‘어떤 사랑 노래인가’이다.

그런데 그의 사랑 노래는 일반적인 러브 발라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듯하다.
평범한 가사와 관습적인 악곡을 되풀이하는 노래들은 안치환만의 정체성도 곡
의 완성도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치환 3집은 이전 시기에 긴장과 대립으로 소원했던 노래 운동
과 신촌 언더그라운드가 만나는 장이 되었다. 시집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창
작과 비평’과 ‘푸른숲’이 손잡은 편집 시집 같다. 이를 계기로 안치환은
두 가지 욕망, 두 종류의 노래, 상이한 수용자층으로 분열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지금까지 안치환이란 기호 아래 그런대로 봉합되었다.

일목요연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분열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
라는 말도 가능할 듯하다.

그런데 그는 1990년대의 시공간에 제대로 안착한 것일까. 아직 그의 음악은
1990년대적이라기 보다는 1980년대 모던 포크의 두 진영, 노래 운동과 신촌
언더그라운드의 방법론적인결합에서 그리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역시 사운드의 정치는 메시지의 정치보다 더 어려운 듯하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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