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서울’은 모든 분야의 구심점이다. 문화부문 역시 과도하리만
큼 중앙에 집중되어 있기에 지역의 자생적인 문화는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진
다.

이런 인식아래 각종 지역문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지역문화를 정책적 지
도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태도와 지방정부 나름의 문화정책부재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에 문화부에서는 지방화 시대에 걸맞게 문
화자치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룰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재정립을
위해 이번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지역문화 개념의 재정립
(2) 지역문화운동, 어디까지 갔는가
(3) 지역문화운동의 현장 ‘태백시’

80년대 중반, 변혁에 대한 열정이 민중문화운동 전 장르에 걸쳐 뜨겁게 끓어
오르고 있을 때 지역에 살고 있는 문화인들의 발걸음은 열심히 서울을 오
르내리는 것으로 바빴다. 연우무대의 ‘한씨 연대기’나 ‘칠수와 만수’를
보러 다니기 바빴고 김지하, 고은의 문학강연회나 문학행사장을 쫓아 다니
다 김남주 시집과 문화운동이론서를 구해 옆구리에 끼고 내려왔다.

지방문화는 서울의 문화를 모방하기에 바빴고 서울의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문
화를 이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문화의 수직성, 종속성은 모든 문
화인들의 문화안테나를 서울로 고정시켜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광주같은 특별한 지역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 지역문화운동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유월항쟁을 전후한 시기였다. 그동안 문학동인을 만들어 활동해 오던
문인이나 춤이나 노래모임 그리고 민미협에 속해 있던 화가들이 개인 또는
소모임으로 결집되어 자기분야의 활동을 해오다 하나로 모이면서 운동으로
서의 문화라는 일을 시작했다.

거기다 90년대 초, 국제정세의 변화, 3당야합 이후 뒤꼬이는 국내 정치상황
속에서 패배의 분위기는 민민운동권전반으로 퍼져나갔고 문화운동 역시 이
런 분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지역문제에 구체적으로 다시 관심을 돌
리게 되고 문화운동의 활력을 되찾게 된 것은 지역민예총의 건설이후라고 볼
수 있다.

충북민예총의 경우 문화운동연합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확대개편하여 ‘민족
문화’ ‘지역문화’ ‘건강한 삶의 문화’ 건설을 분명한 목표로 삼았다.
똑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지역성과 민족성을 함께 찾을 수 있는 사업을 목적
의식적으로 추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90년대 민민운동권을 침체와 동요의 늪으로 끌고간 주요 원인이 초
국적 자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도 베를린 장벽의
무너짐도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다니는 이 흐름을 세계화라고 부
르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위에서부터 이루어지는 상향해체와 다르게 국가의 권력과 장벽을 지
방 단위로 쪼개나가며 하향해체하는 이런 자본의 요구 속에서 지방화가 추진
되고 있기 떼문에 지방화의 의미를 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세계화 지방화가 진행될수록 민족의 고유성 민족경제 민족문화
를 더 확고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똑같이 지역의 정체성, 지
역경제, 지역문화를 지키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최원식교수의 말대로 “전지구적 시야로 지역을 보고 지역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상호침투적인 시각”을 갖고 지역문화운동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
이었다.

지역성과 민족성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작품이나 공연 그리고 예술행사를 만
들어 나가자는 이런 취지는 곳곳에서 이어져 생겨났다. 지역의 역사, 인물,
문화, 문학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시와 소설로 써
내고 연극무대에 올리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문학에 대한
연구발표회를 갖고, 단재선생을 생각하는 시와 노래의 밤 공연을 기획해서
무대에 올리고, 이어서 단재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쪽으로 지역인사들과 함께
방향을 잡아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친일파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지역사회 여러 단체의
요구와 맞물려 지역의 중요한 쟁점을 형성하였다.

지역의 작고한 문학인, 문화예술인 중에 우리의 풍부한 문화자산으로 받아들
이고 그분들의 정신을 지역의 자긍심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위한 사업으로
추진한 것들도 있다. 분단으로 인해 매몰된 시인, 소설가 등의 존재와 그들
의 문학을 찾아내어 문학제를 열었다.

부은출신의 오장환 시인 문학제 및 생가터 표석설치 사업, 감자꽃의 동요시
인 권태응 동요제, 근대조각의 선구자 김복진 미술제, 그리고 임꺽정의 저
자 홍명희 문학제와 생가보전운동 등을 시작하였다. 이런 행사들은 학술적
인 성격에다 연극적 요소와 그분들의 생애와 문학자료 등을 담은 슬라이드
강의 그리고 그때마다 음악위원회나 작곡가들이 새로 작곡한 노래등을 곁들
여 행사를 다채롭고 풍요롭고 만들어 갔다.

제천민예총에서는 제천의병문제를 중심으로 의병제라는 새로운 예술제를 시와
함께 성공적으로 개최해 지방중소도시에 새로운 도시이미지를 심고 시민들의
의식을 의리와 의병정신이라는 것으로 묶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청주민예총은 시에 옛지명 표석설치사업을 제안하여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행정구역명칭이 주는 도식적인 이름에서 탈피한 옛지명을 다시 살려 조각작품
으로 만든 표석을 설치하여 동네마다 세워나가는 사업인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두 개의 사업은 지역문화운동 단체가 대항문화세력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
라 어떻게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지역문화를 창출해나가는 대안문화세력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권력의 중앙집중, 문화의 중앙집중을 비판하면서 권력이 분화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권력의 분화는 중앙에서 나누어 주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에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지역문화를 창출해 내야만 문화의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힘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에서 ‘마지막 테우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소설
작업은 가장 제주도적이면서 또한 가장 민족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김용택의 ‘섬진강’은 자기가 묻혀사는 임실동네와 그곳 사람들을 이야기하
지만 오늘날 무너지는 우리 농촌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가장 지
역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이며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역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늘 그런 생각을 해왔다. 지역에
서 바로 잡아야 할 민족문제는 무엇인가, 지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들을 해결하는 데 문화가 맡아야 할 몫이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해왔다.

지역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민족적으로 실천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 그래서 늘 새롭게 계획하고 만들어 내는 일이 많았고 따라서 패배주의나 청
산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역에는 일은 많고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이
었다.

도종환<충북민족예술인총연합 문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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