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불거리는 지팡이를 든 할머니인 줄 알았다. 우리 할머니는 허리가 꼿꼿 하셨고, 노랫말 중에 ‘꼬부랑 고갯길을…’이라는 가사도 듣곤 했기 때문이다.

안성에 살면서 허리가 휠대로 휘어 턱이 땅에 닿을 것 같은 할머니를 보고서야 꼬부랑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왜 그렇게 되셨는지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휜 분이 거의 없고, 대개 할머니들이 먼 발치 앞을 재촉하듯 걷는 것도 알았다.

역사를 바로 알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할머니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에게 꼬부랑 할머니는 영원히 왜곡된 채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더구나 지나간 역사는 이렇게 우연으로라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가끔 “옛날엔 이보다 더 했어!”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질 때가 있다. 이 말은 ‘너희들은 옛날의 혜택을 받고 있어. 그 어려운 옛날을 겪은 우리는 위대하고, 그래서 말할 권한이 있는데, 잔말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또 ‘옛날은 노 터캄라는 뜻도 있어서 “옛날이 어땠는데요?”라고 물을 수도 없다.

옛날을 들먹이면서 옛날에 대하여 말을 못하게 하는 이 논리는, 독재자의 논리이고, 이에 편승하여 ‘어려운 옛날’로부터 진짜 혜택을 입은 기득권자들의 논리이다.

이들에겐 옛날이 항상 지금보다 더 좋았지, 절대로 어렵고 나빴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옛날엔 고생 참 많이 했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하면서, 사람들의 입을 막고 그 위에 군림하여 혜택을 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극우세력은 군국주의로 돌아가기를 염원하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군사독재시절에 대해 깊은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에 계속해서 재갈을 물려놓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는 아름답게 장식이 되고 현재 자신들의 기득권도 정당화된다.

1998년 4월 2일 많은 프랑스 국민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모리스 파퐁의 재판결과에 귀를 기울였다. 파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보르도 지역의 경찰서장을 지낸 대독협력자였는데, 막판에 극적으로 배를 잘 갈아타서 해방 후에는 레지스탕스로 분류되더니, 계속해서 경찰 계통의 고위직을 설렵하다가, 국회위원이 되고 나중엔 재무부 장관자리까지 꿰찬 인물이다.

철저하게 위조된 파퐁의 행적 중에서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보내 죽게 한 반인륜적 범죄-공소시효가 없는-가 드러나 드디어 이날 오전 9시에 10년형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확실하게 대독협력자들을 처단함으로써, 독일 점령으로 인해 팽배했던 기회주의와 패배주의를 깨끗하게 청산했던 프랑스는 아직도 이렇게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피노체트 군부독재 이후 칠레는, 두 개의 칠레-독재시절의 탄압과 인권유린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칠레와 당시의 경제정책에 편승하여 부를 축적해 행복해하는 칠레-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현재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쪽과 경제문제나 해결하자는 쪽이 맞선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중국의 국수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로부터, 밖에서도 역사 왜곡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란, 법이 공평을 유지함으로써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진실을 지킴으로써 정신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우리 지식인들이 더 이상 독재나 기득권의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중심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진실할 때 두 개의 조국은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서명수씨는 외국어대 불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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