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명절 내내 전을 부치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하기 때문에 명절을 빗대어 노동절이라 부른다는 웃지 못 할 우스개 소리가 있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지금 이 시절에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는 아직 완전히 달라진 것 같지 않다.

70년대 저항문화의 흐름 속에서 잉태되어 소외 받았던 여성의 이름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켜 평등한 세상 구현에 한 몫 단단히 했던 페미니즘 미술은 사회적 변화와 실천을 모색한다는 면에서 미술이 가진 건강함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즘 미술의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라는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작가의 지휘 하에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마추어와 전문 여성인력 400명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기본적인 구도는 여성들을 저녁 만찬에 초대하는 설정이다.

삼각형의 한 면에 13명씩, 총 39명의 여성들을 초대하고 있는데, 여기에 초대된 여성들은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여신들을 포함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여성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중요 여성들을 망라하고 있다.

과거의 여성이 주로 식탁을 준비하고 손님들을 시중드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역사의 만찬에 초대된 주인공이 된 것이다. 테이블 아래의 플로어에는 999명의 수많은 여성들이 이름이 새겨져 있어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숱한 여성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테이블 위에 놓인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도자기 접시들이다.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이러한 여성 성기 이미지들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된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적 에로티시즘을 위해 선택된 것이다.

이렇게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자궁도상을 포함하여 자위, 월경 등의 고유한 여성성을 드러내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아울러 퀼트나 바느질 같은 전통적 여성 기예가 갖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남성 중심적 시선 하에서 자수, 직조, 바느질 같은 수공예가 저급한 여성미술로 폄하 당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이런 공예가 가지고 있는 적극적인 가치를 살려내고 이를 여성성과 여성 문화의 시각적 메타포로 활용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성을 본질적인 것,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에 대한 고정된 상징적 재현체계 내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본질주의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롭게 여성의 시선을 세상에 알리고 역사에 당당히 여성의 존재를 보란 듯이 알린 이 작업의 의의는 축소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쓴 민병직씨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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