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우리나라가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테러 위협에 실질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인천국제공항에 ‘9·11 테러’ 이후 3년 여만에 장갑차를 배치했다.

이 신문기사를 읽고 나면 테러가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불안감이다. 그리고 테러는 나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테러는 단순히 나쁘다와 좋다라는 문제의 영역에 놓여있지 않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했고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투척했다.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행위는 나쁜 것이며 범죄인인가.

‘9·11 테러’를 계기로 하버마스와 데리다와의 대화를 다룬 『테러 시대의 철학』에서 하버마스는 테러의 목표들이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테러리즘의 정치적 내용을 재구성한다고 본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오직 회고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그 정치적 내용을 확보한다고 주장한다.

윤봉길과 안중근처럼 민족 해방 운동의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로 간주되거나 테러리스트라고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이 상황이 급격하게 역전됨에 따라 새로운 정치 지도자로 부상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렇지만 9·11 테러로 인해 주목을 받은 그러한 테러리즘 형태는 정치적으로 현실주의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테러리즘은 정치적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버마스는 비판한다.

그런 이유로 부시의 테러리즘과의 전쟁 선언에 대해 하버마스는 매우 놀란 입장을 표명한다. 왜냐하면 테러리즘과의 전쟁 선언은 테러리즘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하버마스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왜냐하면 하버마스가 볼 때 이러한 정부들은 알려지지 않은 적에 대해 과도하게 대응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일상생활의 병영화가 입헌 국가의 운영을 방해할 수 있으며, 또한 민주적인 참여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군사 자원이 불균형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테러리즘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책임감 있는 유일한 행동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마치 자명한 개념인 양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테러리즘 운동을 도착적인 방식으로 도와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본질적 준거가 되는 일련의 구별사항들이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리다의 생각에 따르면, 전쟁 역시 시민들에 대한 위협을 수반하며, 테러리즘적 요소도 수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국내적 테러와 국제적 테러, 지역적 테러와 전지구적 테러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테러 행위를 구분하기 위해 엄격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테러리즘이라는 가정된 실체에 어떤 술어를 덧붙일 가능성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테러리즘이 어떤 고정된 의미나 의사일정, 정치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부정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테러리즘은 그 정체가 알 수 없는 개념이며 전지구적 정치권이 장차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본다. 또한 두 사람은 세계 시민과 세계시민권이라는 계몽주의적 이념의 가치를 확고히 인정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보편적 공동체 형성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쓴 송승환씨(poetika@naver.com)는 학술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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