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김성희씨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평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남들 살아가는 대로, 남들이 옳다고 믿고 바른 길이라고 믿는 그 행보를 따라 의심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남들보다 훌륭한 삶을 살아가지는 못할지라도, 남들처럼만 한다면 손가락질 받을 일은 없다. ‘비정상’이니 ‘일탈’이니 하며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떼로 몰려들어 관찰 당하는 일도 없다. 낯선 것, 새로운 것, 모호한 것에 들이대는 편협하고 낯선 ‘정의’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고를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그녀들은 이 번거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때문에 그녀들은 할 말도 많다. 10대이자 여성이며 동성애자인 자신들을 두고 떠들어 대는 수다쟁이들이 많은 만큼 그녀들은 할 말이 많다.

“전 좀 달라요. 제가 노력해서 바뀔 문제였다면, 전 이미 예전에 이성애자가 되었을 거예요.” 동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정색하며 이야기한다.

동성애를 성적 ‘취향’으로 이야기한 내 ‘가벼운’ 말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남다른 경험들을 열거하며 자신이 동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근거들을 짚어낸다.

여성스러움의 덕목에 낯설어하고, 남성이 아닌 여성을 사랑하며, ‘학생’이라는 무성적 존재이기 보다는 성적인 존재이기를 택한 그녀. 자신이 발견한 이러한 근거는 10대 여성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되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만난 그녀들 대부분이 이렇게 자신을 설명했다. 난 ‘진짜’ 동성애자라고 말이다.

"평소에는 일반(이성애자)인척 가장해요"

성인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더욱더 끊임없는 검증과 검열을 요구 받는다. 청소년기는 정체성 혼란의 시기이며, 청소년에게 ‘성(性)’이란 위험천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동성애라니. 한참 떠들썩했던 ‘팬픽 이반’이 문제가 되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에 스타를 쫓아 몰려다니는 것도 혀를 찰 노릇인데, 거기다가 칼 머리에 힙합바지를 입은 사내 같은 여자아이와 긴 생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양새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때문에 한국사회는 철없는 청소년들의 ‘유행’으로 그녀들의 성정체성을 폄하하고, 청소년 ‘문제’에 또 다른 항목을 보태는 것으로 청소년 동성애를 묻어버리고자 분주했다.

내가 만난 그녀들이 자신을 ‘진짜’ 동성애자라고 힘주어 이야기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들은 사회가 비난하는 ‘가짜’ 청소년 동성애자와 자신들을 애써 구별 짓고자 한다.

그녀들에 따르면 팬픽이반은 스타에 대한 동경 때문에 단순히 동성애를 ‘모방’하고,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스타일을 정형화함으로써 ‘진짜’ 동성애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들의 고민을 가벼운 유행으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정형화된 한 가지 스타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 난 그녀들의 ‘구별 짓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했다. ‘팬픽 이반’이 이성애의 역할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팬픽 소설’이나 ‘야오이’ 만화가 이성애의 로맨스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팬픽 이반'에게 보여주었던 불편함은 청소년 동성애의 드러남 그 자체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팬픽 이반’이 사회에서도 그리고 또래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녀들이 유달리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촌역에 모여앉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이, 공공연히 드러내는 그녀들의 로맨스가 사회적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고, 그 위협이 다른 또래 동성애자들을 다시 한 번 위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일반(이성애자)인척 가장해요. 애들이 동성애자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내가 더하죠.”라는 한 청소년 동성애자의 말처럼 어쩌면 ‘팬픽 이반’에게 보여주었던 그녀들의 불편함은 청소년 동성애의 ‘드러남’ 자체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즈음 각 중·고등학교에서 ‘이반사냥’이 벌어졌다고 하니 그녀들의 우려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진짜도 가짜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성애자들은 자신이 진짜, 정말 이성애자일지 고민하진 않는다. 우리가, 그리고 내가 애써 청소년 동성애를 혹은 ‘팬픽 이반’을 명확한 몇 가지 단어들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녀들이 감당해야 할 수고로움에 또 다른 번거로움을 보태고 있을 뿐이다.

사랑에 대한 정상성 부여를 통해 진행되는 이성애 중심의 논리에 의도치 않게 맞장구를 치고 있는 셈이다. 가시화되지 않았던 청소년 동성애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수록,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역으로 이성애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젠더체계는 더욱더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그녀들을 그냥 사랑하게 하자.

이 글을 쓴 김성희씨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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