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작가 이서인의 장편 성장소설 「숲 속의 연어」. 본 소설은 유려하고 진정성 어린 문체가 돋보이는 내밀한 자아의 조숙한 소녀가 여인이 되기까지의 비원 서린 성장일기이자, 고해성사와도 같은 어두운 사춘의 비망록이다.  

 소설의 주인공?이산우‘는 폐가에서 홀로 살던 미친 여인이 죽음으로 해산한 아이를 산지기가 주어다 기른, 원죄와도 같은 출생의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이다. 게다가 그녀는 비극적인 출생의 순간까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 던져짐과 동시에 삶의 비애를 이해해버린 명민하고 조숙한 애늙이다.

출생의 비밀에 얽힌 고뇌, 소외된 유년기, 고통스런 생에 대한 자발적 종료에의 유혹, 예술에의 동경과 도전, 유전된 매독으로 인한 육체와 성을 향한 수치심, 일반적일 수 없는 사랑 등 일련의 통과의례를 통과하는 한 마리 연어로 표상된 그는 내면 깊이 녹아든 상처와 천성적인 어두움, 외로움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발효시켜 타자뿐인 세상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성장소설에 주 캐릭터들은 일반적으로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은 도식화된 안정적 삶에 운명적으로 거부당하거나 또는 주체적 선택에 의해 언더그라운드에 거하며 음지의 삶을 의무인양 목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아웃사이더의 내면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는 조력자들과의 일련의 만남과 이별하는 경험들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산우 또한 이러한 성장소설의 도식에 따라, 유년기부터 비루하고 힘에 겨운 주변부 인생에 정체성을 소속시켜 현세를?어둠‘의 렌즈로 투시하고?한과 상처’라는 테마로 이해한다.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유년기의 산하가 겪게 되는 오해와 집단폭력의 일화는 앞으로의 소녀의 노선이란 넓게 뚫어진 대로에선 벗어난, 삶의 부조리와 마찰하는 샛길의 순례일 것임을 암시하는 생의 복선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유년기 사건들은 환상을 포기해야 하는 어른세계로의 편입을 유도하고 삶의 환멸의 계기를 제공, 이로써 그의 생을 관통하는 막연한 소외의식을 지배한다. 자신을 소외시키며 불화 하는 외부세계의 질서를 향한 반항(암묵적 혹은 가시적인.)은 아웃사이더들의 표식이다.

단독자로서의 개별성을 주장하는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들은 획일적으로 주입되는 세상살이의 모범답안을 거부하며 그들 나름의 윤리체계를 주장하는데, 이 윤리의 기준이란 ‘치열성과 진실성, 형이상학 자연법’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윤리체계를 전제로, 유일한 동반자였던 산지기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절대 고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그는 산지기가 남긴 평범한 여자로서 살기 힘들 것‘이라는 유언명제대로, 또?매독(梅毒)이란 단어가 내포한 뉘앙스만큼이나 혹독한 운명을 살아낸다. 그러나 소설은 서문에서 인용된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동사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라는 D. H. Lawrence의 싯구절(<Self Pity>(자기연민))을 증명하듯 '자 그러니 내 생이 얼마나 힘든가라는 식의 투정기 어린 감상성이 절제된, 고통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아를 실현해 가는 예술가 기질의 강인하고 이지적인 여성캐릭터의 행보를 보여준다. 이는?예술가의 운명‘이라는 화두와 함께?예술이란 삶의 경험의 총체여야 한다‘는 명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 것이다. 

숲‘ 과 ’연어‘라는 부조화.  그녀?이산우‘는 곧?헤엄치는 연어?인데 상처 입은 자아를 지닌 이 연어가 본능에 의해 거센 강물을 거슬러 회귀하는 최종 귀착 지는 강이 아닌 실성한 어머니가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광녀의 혼이 거하는 절대 고독의 시공. ’매독’이란 비극적 상황을 낳은 이기적 호르몬-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의 무심한 쾌락의 몸놀림에 죽어간 여인의 비애와 해산의 통증이 서려있는, 무덤이 있는 깊은 숲 속이다.

여기서 '숲‘은 아웃사이더들의 음습한 내적 풍경이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신성한 안식처이며 이는 곧 자궁 이미지로 귀결된다. 창조행위인 생명탄생이라는 과업을 위해 고행하며 회귀하는 연어의 몸짓은 자신의 근원을 모색하는 예술가들의 자아 수행과정, 예술적 순교행위와 긴밀한 유사성을 지닌다.

이와 같이 산하가 자신 앞에 열렸던 태초의 시간을 상기하고 글로 기록하려 시도하는 대목에선 유년의 기억이 떠도는 자궁만큼이나 깊은 숲의 정적, 차갑게 정제된 비애감이 떠도는 연극적 공간과 무성한 그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유영하는 은빛 연어의 환영이 떠오른다. 작가는 삶이란 존재의 구원을 찾아 끊임없이 스스로와 싸워나가는 도정임을?숲 속의 연어‘라는 상징적인 제목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탐구’와 ‘모성 신화적 공간으로의 자궁회귀’라는 화두를 통해 여성인 주인공은 강박적 결벽(潔癖)과 혐오의 알에서 탈피한, 건강한 성 정체성을 확립케 된다. 
 
'성이 내 천형으로 거부되어 있다는 주술에 사로잡혀있다. 미친 어머니와 그 아랫도리에서 이어  받은 매독.출산이니 모성이니 하는 단어 하나에도 몸이 굳어지고는 했다. 확실히 주술이었다.'

 창작행위, 곧?예술‘은 인간의 본질을 모색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상처 입은 자가 그 생채기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생리적인 치료반응인 동시에, 자아누설의 욕망을 표현하여 그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산우는 삶의 환멸을 예술창작의 내적 동기이자 연료로 쏟아 붓는다. 이렇게 독기 서린 자조를 캔버스에 투사, 배출하는 작업은 결국 세계와 운명에 대한 환멸(의 감정)을 삶의 열망으로 개종(改宗)시키는 연금술적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산우가 한 때 열중했던 선정적인 회화작업은, 젊은 육체에 박혀있는 매독에 대한 처절한 절망으로 천형처럼 자신에겐 거부되었다고 믿어온'여성성’을 끄집어내는 감성적이고 원초적인 자가 치료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한 몸이었던 원시적, 야성적인 고통과 환희로 질펀한 선험적 기억의 내면여행을 통해서 제의적이고 블랙홀 같았던 첫 세상-숲 속 풍경을 묘사하는'글 쓰기‘ 행위 또한, 스스로 태초의 순간을 상기함으로써 자연의 원초성과 같이 분열을 통합한 긍정적인 자의식을 획득하고 세계와 자아간의 오랜 대립을 초월하려는 몸짓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소설에서의 산우의 사유체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자의식 강한 아웃사이더들은 자아의 표현 외에도 과거의 추억에 유별나게 집착한다. 개별 경험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추는 작업에 에너지를 쏟는 ’철학자’인 그들은, 지나온 삶의 여정이 유의미한 생의 순례행보라 믿고 회상행위를 통해 생을 방향성을 지닌 드라마, 유기적인 완결체로 이해하고자 한다.

성장소설에서 제시되는 시간운동에서 과거란, 순수하게 현재와 미래의 숙제이자 도약의 발판으로 작용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엔 ‘성숙’이란 개념으로 결론되어지는 이 축복 받은 운명의 괘도 안에서 생은 곧 한 편의 예술작품이 된다.

이는 곧 삶에 있어서 의지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전인격적이고 존엄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획득코자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일종의 소설적 허구의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어쩌면 기실, 본 소설 자체의 주요 모티브이자 주인공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내적 동기인 다음의 명제와 같이 ‘생이란 가치를 부여하는 무수한 기억의 시도들 속에서 새롭게 재 탄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주인공 산우가 자신의 생을 글로 쓰기로 작정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이 실은, 대결구도로 바라보며 혐오해온 완고한 벽들이었던 세상의 타자들에게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누구나 나름의 한계와 고투하며 생존해내고 있는 법일 진데 타인의 생을 연민할 수 없다면 구원받거나 또는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 또한 허용될 수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기둥 높은 시련의 파도 층을 넘어온 이들은 마치 훈장인 듯, 원대하고 깊은 포용성을 띈 따뜻한 미소를 지니게 된다. 예민한 감성의 아웃사이더가 운명을 받아들여 예술을 통해 자아와 세계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술래잡기의 풍경, 비장한 통과의례를 수행해 가는?눈뜸. 깨닫기. 어른 돼가기?라는 성숙의 노정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눈물겹다.

존재에의 화두를 그림자인 듯 달고 다니며 끝내는 상처를 발효(醱酵), 발화(發話), 개화(開花)해내?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이.?모든 외로움 이겨낸 그 사람‘은 진실로 꽃보다 아름답다. 

 소설 「숲 속의 연어」가 천착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가치세계의 집단 미아들인 공허한 정신세계의 현대인에게는 생산적 효용물 또는 소비주체로서 기능하는 것만이 아닌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고 규정할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영육을 쉬게 하고 정화시킬 수 있는 영적 고향과 영적 가치가 부재 하는 시대. 근본적으로 부조리한 이 현실에서 그녀 이산우는 현대인이 망각해버린 내적 성찰의 과제와 예술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예술의 정점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피 묻은 연어’로서의 역할모델을 제시한다.  

'숲 속의 연어- 그녀‘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충실한 삶 또한 존재할 수 없으며, 진실과 고통의 강도에 비례하여 實存의 감각은 실체적인 생동감을 획득하여 치유의 희열 또한 심원(深遠)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이 글을 쓴 정순영씨는 예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학을 전공(석사 3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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